문화·스포츠 문화

아파트 난개발로 상처입은 문화도시 서울의 품격

<서울, 도시의 품격> 전상현 지음, 시대의창 펴냄

(전상현 지음, 시대의창 펴냄)

1959년 한강.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다. 콘크리트 속에 깔리기 전의 모습이다.1959년 한강.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기고 있다. 콘크리트 속에 깔리기 전의 모습이다.





한때 아이들 사이에서 ‘휴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임대아파트인 ‘휴○○○’에 사는 저소득층 거주자를 ‘거지’에 비유해 놀리는 단어였다. 문제는 이것이 아이들만의 장난이 아니라는 데 있다. 반대쪽 분양아파트 어른들의 시선에서 이런 말이 나왔고 이는 분양과 임대 거주자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주거 갈등이 사회적 분열로 비화한 것이다.

새책 ‘서울, 도시의 품격’의 저자인 전상현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강하게 묻는다. 분양아파트 거주자가 이기적이어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근대화 도시정책의 피해자라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개발시대 정부는 주택시장의 대표선수로 아파트에 초점을 맞춘다. 쉽고 빠르고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주거지를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에서다. 실제 아파트 건설은 민간업자가 책임을 졌다. 이들은 아파트 단지에 공원이나 도서관, 보육시설, 스포츠센터 등 편의시설을 만들면서 분양가에 더하는 방식으로 해당 아파트 입주자에 부담을 지웠다.


그러자 입주자들이 이들 시설에 대한 배타적인 이용권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내 돈으로 만든 시설을 왜 다른 사람이 이용하느냐”는 심리에서다. 아파트 단지와 시설은 ‘상품’으로 입주자들이 이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비싼 아파트 단지일수록 시설 사용료를 내지 않는, 임대아파트를 비롯한 외부인에게 배타적이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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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공공인프라를 담당한다는 보편적인 원칙이 한국의 아파트 시장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시장에 맡긴 결과 계급이 생겼다. 아파트 단지들은 견고한 담장을 두르고 끼리끼리 살면서 이웃 단지들과 분리된 것이다.

저자는 임대아파트 거주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공공성을 강화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의해 마련된 더 나은 편의시설이 아파트 단지 밖에 있다면 앞의 ‘휴거’ 같은 어처구니없는 논란은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나라도 사유화를 통한 개발과 성장 제일주의의 구시대적 가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동안 서울의 공간 정책은 무조건 삽질부터 하고 보는 개발주의(박정희~전두환), 그리고 생태와 문화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개발주의와 다를 바 없었던 신개발주의(이명박~오세훈)였다고 봤다. 저자는 도시 문제를 대변하는 공공공간, 공공개발사업, 보존, 아파트라는 네 가지 키워드를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을 본다.

최근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논란도 있지만 여의도의 63빌딩은 1985년 완공 당시만 해도 미국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1970년 조성된 여의도광장은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보다 2배나 넓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기록이다. 몇 년 지나면 순위에서 밀려날 초고층빌딩이나 광장으로서 ‘허세’를 부리는게 구시대 토건국가의 사고 방식이었다. 특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서울의 랜드마크로 추진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추진과정부터 결과물까지 총체적으로 낙제점에 가깝다고 혹평한다. 한양도성과 동대문운동장이라는 역사·건축 유산을 허물었고 주변 공동체 활성화라는 측면에서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책에는 신선한 발상도 보인다. 오늘날 딱히 환영받지 못하는 노점상이나 다세대·다가구 주택 등을 활용해 도시의 공공성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된다. 한강 다리들을 번갈아가며 보행로로 전환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는다. 도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사회학자·건축가·시민단체 활동가·건설회사 임원 등의 가상 대담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2만2,000원 , 사진제공=시대의창

1970년 완공된 서울역 고가도로. 개발시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현재 보행이 가능한 공원화를 위해 공사중이다.1970년 완공된 서울역 고가도로. 개발시대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현재 보행이 가능한 공원화를 위해 공사중이다.


1970년에 조성된 여의도광장. 1970~1980년대 권력 선전을 위한 메가 이벤트가 벌어졌다.1970년에 조성된 여의도광장. 1970~1980년대 권력 선전을 위한 메가 이벤트가 벌어졌다.


1978년 반포 우성아파트 건설현장. 이후 강남은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뒤덮혔다.1978년 반포 우성아파트 건설현장. 이후 강남은 대단위 아파트단지로 뒤덮혔다.


2005년 복원중인 청계천. 콘크리트 어항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반쪽 복원에 그쳤다.2005년 복원중인 청계천. 콘크리트 어항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반쪽 복원에 그쳤다.


2016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모습. 역사유산을 파묻고 주변 활성화에도 실패했다는 평가다.2016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모습. 역사유산을 파묻고 주변 활성화에도 실패했다는 평가다.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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