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공직자의 김영란법 읽기

정양호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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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길어도 새벽은 오는 법이다. 우여곡절 끝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이 내일부터 시행된다. 이제는 공직자 등에게 부정청탁을 하거나 업무 관련자에게 3만원 이상의 음식물, 5만원 이상의 선물, 10만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제공하게 되면 처벌을 받게 된다.


법 시행과 관련해 논란이 있었던 것 중 하나는 법 규정으로 다양한 상황을 전부 규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컨대 업무 관련자로부터 3만원 이상의 음식대접을 받지 못하게 돼 있지만 업무 관련자 인지에서부터 음식 가액의 산정과 배분, 식사 후 선물지급 사례 등 다양한 상황에서의 위반 여부를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다양한 경우에 대한 지침서를 제공하고 있지만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판례가 축적돼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그래서 법 시행 직후에는 될 수 있으면 업무 관련자를 만나지도 말고 식사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이 공직 내부의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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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 번 ‘김영란법’에 대한 교육을 받고 책 한 권 분량의 지침서를 공부했다. 그런데도 각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공직자 행동을 규제하는 금지법이라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은 설명하고 있지만 그럼 ‘어떻게 하면 된다’는 적극적 지침을 주지 못하고 있다. 아무튼 이제 공직자들이 ‘김영란법 바로읽기’를 해야 하는 시점이다. 필자는 이렇게 행동하라는 적극적 측면에서 ‘법 다시 읽기’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다. 첫째, 원활한 업무수행을 위해 필요한 경우 직무 관련자와 ‘3만원 이상의 음식을 접대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업무 관련자와 식사할 때는 자신이 먹은 음식값을 자신이 낸다’로 해석하면 어떨까. 둘째, 3만·5만·10만원의 가액 한도를 상식적 기준에서 판단해보자. 복잡한 체크리스트를 가지고 가부를 따지기 이전에 식사나 선물 등이 개인의 사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업무상·관습상 불가피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예식장에서 특정하지 않은, 모든 하객에게 동일하게 음식을 대접한다면 금액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 우리의 관습이기도 하다. 셋째,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처리하자. 직무 관련자는 가급적 공개적으로 만나고 만난 사실을 투명하게 정리해두자.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 법이다. 공개적으로 만나고 만난 사실을 정리해두면 설령 나중에 의심을 받게 되더라도 떳떳하게 대응할 수 있다. 넷째, 기관마다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시 이를 신고하고 규정에 따라 처리하는 절차를 만들고 이에 따라 행동하자. 엄격한 사후관리만이 우리의 관습과 태도를 단시간에 바꿀 수 있는 첩경이다. 사실 김영란법의 핵심 내용은 공직자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행동강령이다. 오래된 관습이라 쉽게 바꾸지 않았던 우리의 행동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한다. 공직사회를 투명하게 만들자는 취지로 제정된 법이 공직자를 복지부동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하지 말라’가 아니라 ‘이렇게 하자’는 적극적 행동강령으로 재해석해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양호 조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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