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 더 이상 땜질식 지진대책은 안된다

문현철 조선대 법학과 초빙교수·재난방재법

문현철 조선대 법학과 교수문현철 조선대 법학과 교수


요즘 논어에 나오는 ‘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란 말이 자꾸 되새김질 된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칠 줄 모르는 것이 진정한 잘못이라는 뜻이다. 9·12 경주 지진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그동안 정부의 지진대책을 살펴봤다. 지난 1986년 내진설계가 건축법에 규정되고 1988년부터 ‘건축물의 구조기준 등에 관한 세부사항’이 규정돼 의무화됐다. 1995년 일본 고베 지진을 계기로 자연재해대책법에 지진조항을 보강하고 지진방재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지난 2008년 3월에는 단일법으로 지진재해대책법을 제정해 국가와 시설물 관리기관의 지진방재도 의무화됐다. 하지만 이번에 규모 5.8의 본진과 430회가 넘게 여진이 지속되고 있는 경주 지진은 지금까지 진행해온 지진대책이 역부족이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일본도 1995년 고베 지진 당시 초기 대응에 실패하고 내진설계도 미비했으나 이를 계기로 철두철미한 대책을 세워나간 점을 되짚어 봐야 한다.

우리도 지금부터 근원적인 문제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할 때다. 지진재난에 대해 무작정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국민 모두 귀중한 학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그간 우리 정부가 지진방재를 위한 예산 확보에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활성단층 등 기초연구가 부족했고 지진전문가 양성은 물론 변변한 지진연구소조차 하나 없다. 국회는 논쟁만 했지 제대로 된 법을 제정하거나 잘못된 법을 고치지도 못했다. 국가재난관리시스템과 재난현장의 특성을 잘 모르는 국회와 언론은 망연자실해하는 주민들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전달하는 포퓰리즘적 자세를 취해왔다. 근원적인 대안을 찾지 않고 남 탓만 하는 태도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앞으로는 행정기관 중심의 지진방재 대책에서 벗어나 민간전문가들의 새로운 시각을 통한 첨단 기술 활용방안을 공동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스스로 지진에 대한 정보를 쉽게 터득하고 대피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행동요령을 습득할 수 있도록 대국민 홍보에도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언론은 평소 재난예방에 대한 국민행동요령을 얼마나 잘 보도했는지, 매년 실시하는 재난훈련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주었는지 반성해야 한다. 물론 정책기관의 시시비비를 가려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주는 언론 본연의 역할도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에서 벗어난 과장된 보도로 기관이나 개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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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의 대비와 대응은 국민과 방재 당국의 팀워크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참에 정부는 제도 및 연구 중심의 기존 지진 방재 대책에서 나아가 실제 지진상황에 적용 가능한 개선대책을 반드시 내놓아야 한다. 더 이상 땜질식 졸속 처방은 용납될 수 없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이번에 반드시 근원적인 문제점을 분석해 지진방재 종합개선책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특히 재난 현장의 기초적 대응기관인 지자체의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지진 선진국들의 전문가를 초빙해 체계적인 지진대응시스템을 강구해볼 필요도 있다. 그동안 지진대응 매뉴얼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부족해 불신을 초래하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명확한 매뉴얼을 만들어 다시는 혼선을 빚지 않도록 하는 점도 중요하다.

아울러 지진 관련 예산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와 더불어 지진 관련 중앙부처와 지자체까지도 전담조직을 강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한다. 재난 발생의 공통된 원인은 사소한 부주의와 안전불감증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기본을 충실히 지키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잘해 왔는데 설마 무슨 일이 있겠는가’‘이번만은 무사히 지나가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과 기본 수칙들을 무시한 그릇된 행동에서 재난의 싹이 움트는 것이다. 정부의 꼼꼼한 대책과 국민들의 생활 속 실천이야말로 안전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이번 경주 지진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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