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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장 허무한 질문이 '다시 태어난다면?'이지만, 그 가정(假定)이 절실할 때가 있다. 어느새 장성한 아들을 볼 때다. 뒤돌아보면 너무나 부끄럽고 미숙한 부모였다. 육아는 힘들기만 했고, 더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였지만 알게 모르게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를 했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는 내용이다. 언제 걸었나, 언제 말을 시작했나, 유치원에서 뭘 먼저 배웠나로 일희일비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이 내 성적표처럼 받아 들여졌다.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둔 엄마들은 당당했지만 그렇지 못한 엄마들은 기가 죽는다. 아이의 품성이 어떻든, 좋은 대학을 갔느냐 못갔느냐로 세상의 평가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비도 다 넘기고보니 모두 부질없다. 결국은 부모와 자식이 얼마나 서로 사랑하고 좋은 사람으로 성장했느냐만 남아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것은 지금보다 더 잘 할 자신이 없지만,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사랑을 표현하고 아이를 이해해주고, 무엇보다 함께 있는 시간에 행복을 느끼고 싶다.
영화 '사도'(이준익 감독)의 영조도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봤을까?.
조선 21대 왕, 영조는 콤플렉스가 많은 임금이었다. 무수리 출신 어머니에, 임금이 되는 과정에서도 많은 의혹이 있었다. 하지만 영조는 학문에 힘썼고 뒤늦게 얻은 아들, 사도세자에게만은 당당한 왕권을 물려주기 위해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모든 부모들의 문제인 것 같다. 부모의 사랑은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것도 알고보면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자신의 말에 순종하길 바라고 좋은 성적을 가져다주길 바라고 돈도 잘 벌길 바라고 좋은 배우자를 데려오길 바라고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란다.
성숙한 부모라면 그 바램을 멈출줄 알지만 영조처럼 콤플렉스가 심하거나 마음의 요동이 심한 사람은 기분에 따라 아이를 조련한다. 물론 영조도 할말이 많을 것이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겨우 서너살 어린시절부터 공부 공부 공부, 얼마나 숨이 막힐까. 기준도 오락가락이다. 결단을 내리면 무시했다고 뭐라하고 결단을 미루면 나약하다고 호통이다.
사도세자의 타고난 품성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부모가 이렇게 강압적이면 심장과 정신이 강철로 이루어지지 않고서야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바란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길 한 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사도세자의 절절한 이 한마디는 어쩌면 모든 자식들의 마음일지 모른다.
자식은 다 안다. 부모가 정말 나를 사랑해서 야단치는지, 부모 욕심에, 부모 성격에 매를 드는지. 사랑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저절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영조만큼 대단한 권력과 야심이 없을 뿐이지 자식에 대한 욕심은 나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 보면 나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나? 우리 엄마가 나를 위해 헌신한만큼 자식에게 올인했었나? 전혀 아니었다. 부모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고 있지만 자식들은 더 외로워지는 건 아닌지, 이제라도 내가 자식에게 어떤 부모로 살아가야할지 영화 '사도'는 나에게 묵직한 반성과 생각을 하게 해줬다.
조휴정 KBS PD(KBS1라디오 '빅데이터로 보는 세상'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