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선거관리위원회는 2일(현지시간) 콜롬비아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간 평화협정 국민투표 결과, 찬성 49.78%, 반대 50.21%(개표율 99.9% 기준)로 부결됐다고 밝혔다. 반대표와 찬성표의 표차는 5만7,000표였으며, 투표율은 37%에 불과했다.
투표 결과 발표 직후 후안 마누엘 산토스 대통령은 TV로 방영된 대국민연설에서 패배를 인정한 뒤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며 “남은 임기의 마지막 순간까지 평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드리고 론도뇨 FARC 지도자도 “증오로 여론에 영향을 미친 파괴적인 권력을 지닌 이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대화를 미래를 만들기 위한 유일한 무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평화협정 ‘찬성’이 압도적이었던 여론조사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자 콜롬비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서방 언론은 콜롬비아 국민들의 정서에 뿌리깊이 박혀있는 반군에 대한 반감과 반군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주장이 호소력을 얻으면서 막판 뒤집기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평화협정은 전쟁 범죄자를 사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반대운동에 앞장선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현 상원의원) 지지자들이 부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지역별 투표결과를 분석해 보면, 안티오키아주 등 반군에 대한 반감이 높은 북서부와 중부에서 ‘반대’ 표가 무더기로 쏟아졌다.
기상악화라는 날씨 요인도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콜롬비아 북부 해안지대에 허리케인 ‘매슈’가 몰아치면서 평화협정을 지지해온 농촌 지역의 투표율이 뚝 떨어진 것이다. 특히 홍수 피해가 극심한 북부 지역에는 투표소조차 설치되지 못한 곳이 80여 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평화협정 부결로 콜롬비아는 평화도 전쟁도 아닌 ‘정전’이라는 어중간한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커졌다. 양측 모두 무력충돌 재발은 자제하겠다는 입장이지만 평화협정을 되살릴 뚜렷한 방안도 없기 때문이다. 파울라 사엔즈라고 자신을 밝힌 FARC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번 부결이 곧 전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평화협정 부결 직후 콜롬비아 내부에서는 재협상 내지 기존 협정안의 입법화 등 다양한 대안이 거론되고 있지만, 정국 주도권을 상실한 현 정부가 평화협정을 재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대세다. 워싱턴 중남미연구소(WOLA)는 ”투표 부결로 정부와 FARC간 협정은 정통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