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거부된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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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탕! 탕!’ 1995년 11월4일 중동평화회담 지지 집회가 열리던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스라엘 극우파 소속 청년이 쏜 총탄들은 방탄 캐딜락 승용차를 타려던 이츠하크 라빈 당시 이스라엘 총리를 향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오슬로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던 ‘이스라엘의 존 F. 케네디’는 협상에 반대한 이스라엘 극우파 청년의 분노에 스러져 갔다. 이때 무너진 것은 라빈뿐만이 아니었다. 모처럼 찾아온 중동 평화의 가능성 역시 라빈의 호주머니에서 발견된 피 묻은 평화기원 노래 가사 쪽지처럼 조각조각 찢겨버렸다.


헬렌 켈러는 말했다. ‘나는 합의를 거친 평화는 원하지 않는다. 평화를 가져오는 합의를 원한다’고. 국민과 상대방이 진심과 이해로 동의하지 않은 평화가 오래갈 리 없다. 오히려 또 다른 비극을 낳을 뿐이다. 라빈이 그랬고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 지 2년 만에 같은 국민에게 목숨을 빼앗긴 것이 그랬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미국이 제안한 평화협상에 진정성이 있었다면 피비린내 나는 전투는 더 이상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평화의 목적이 베트남이 아닌 ‘닉슨의 재선’이었다. 협상은 깨졌고 정글과 마을은 다시 화염과 포연에 휩싸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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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정부와 최대 반군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간 평화협정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됐다는 소식이다. 전임 대통령이 반대를 주도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반군 범죄 처벌과 피해자 보상, 토지 분배 등 협상 내용에 불만이 표출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부의 평화협정이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정부와 반군이 지난 52년간 벌였던 내전으로 민간인 18만명, 군인 4만명 등 무려 22만명이 희생됐지만 콜롬비아에 평화가 오려면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역시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은 민주주의만이 아니다.

/송영규 논설위원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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