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로에 선 K바이오]'매출 55조 노바티스' 꿈꾸지만...국내 제약사는 이제 1조 수준

<1>수준은 걸음마... 기대는 장밋빛

4대 주체 '벤처·대기업·병원·대학' 여전히 따로국밥

정부지원·감독체계도 부처별로 쪼개져 효율성 떨어져

신약개발, 평균 10년에 2억弗 들어가는 장기대형사업

눈앞 성과 연연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산업밑그림 짜야



의약품 시장조사기관인 IMS에 따르면 국가별 세계 제약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08년 기준으로 미국이 42%로 1위이고 일본이 9%로 2위다. 이어 프랑스(6%)와 영국(3%) 같은 유럽 국가 순이었다. 우리나라는 1%대에 불과하다.

개별 기업을 살펴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글로벌 1위 업체 노바티스의 지난해 매출은 503억달러(약 55조원)에 달한다. 매출 1조원을 겨우 넘는 국내 제약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국내 업계도 최근 들어 성과를 내고 있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사노피와 이번에 문제가 된 베링거인겔하임에 신약기술을 수출했고 셀트리온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아 자가면역치료제 바이오시밀러(복제약)인 ‘램시마’의 미국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다. 삼성도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업체(CMO)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바이오에피스를 앞세워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나 스위스 같은 바이오 강국과 비교하면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데도 장밋빛 기대감만 넘쳐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한미약품 사태로 움츠러들기보다는 눈높이를 조정하고 바이오 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가 많다. 지난해 7,690억달러였던 전 세계 제약·바이오 시장은 오는 2020년에 1조29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마일스톤(단계적 기술수출료)을 비롯해 신약개발 구조를 정확히 알고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며 “척박한 바이오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해 기업이든 정부든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바이오 업계는 아직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신약개발은 성공하건 실패하건 평균 10년간, 2억달러가 들어가는 장기 대형 사업이다. 이 때문에 벤처가 초기에 벤처캐피털(VC)의 도움을 받아 신약개발에 나서고 어느 정도 개발이 이뤄지면 중간기업이나 대형 제약사가 이를 사들이는 구조가 필수다. 미국은 병원이 신약개발의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은 연간 4억5,000만달러의 연구비를 투입해 지금까지 17개의 신약개발에 성공했다.

관련기사



하지만 국내 바이오벤처는 양과 질이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신약개발의 4대 주체인 벤처와 대기업·병원·대학은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따로국밥’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벤처의 기술을 상업화해줄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는 덩치가 작고 대형 병원도 연구개발(R&D)보다는 진료수익에 의존하고 있다. 삼성병원만 해도 진료수익 비중이 95%에 달한다. VC의 바이오 초기투자 비중(15%)도 다른 산업의 평균(30%)에 비해 낮아 초창기 벤처의 어려움이 많다. 방영주 서울대병원 임상시험센터장은 “바이오 산업은 벤처가 아이디어를 발굴하면 자본력 있는 대기업이 흡수해 상업화시키는 과정이 쉼 없이 이뤄져야 발전한다”며 “국내에는 이런 식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오 산업 지원과 감독 체계도 부처별로 쪼개져 있다 보니 효율성이 떨어진다.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얘기다. 현재 바이오 관련 부처는 미래창조과학부와 보건복지부·산업통상자원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다. 이상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바이오 담당 프로그램디렉터(PD)는 “부처별로 고유의 역할이 있다고 하지만 일관성이나 영속성이 떨어진다”며 “여러 부처 사업을 하나의 일관된 형태로 운영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존의 지원책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조성을 추진 중인 최소 5조원 이상 규모의 ‘메가펀드’나 획기적인 세제혜택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세계 최저 수준의 법인세(12.5%)와 R&D 세액공제(최대 37.5%)를 통해 글로벌 제약사를 끌어들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외임상 3상과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세제혜택이 가장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해외임상 3상의 경우 일반적으로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김주현 전국경제인연합회 책임연구원은 “바이오 부문은 분업화가 돼 있기 때문에 각 주체가 고루 성장해야 생태계가 조성된다”며 “이를 위해 글로벌 기업 유치를 위한 세제지원과 시설투자 및 바이오시밀러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바이오 분야 공시제도도 전반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약개발 중단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계약 총액을 공시하는 것보다 단계별 공시를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총액 공시를 고수하더라도 계약중단 가능성에 대한 위험성을 충분히 알려 투자자들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 들어 조선·건설 같은 수주 산업은 사업자금과 미청구공사를 투명하게 공시하고 있는데 신약개발도 그 특성을 감안해 공시내용을 더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영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