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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혼술남녀' 혼자이되 혼자인게 아니다

늦은 퇴근길, 친구에게 연락하기도 애매하고 바쁘게 스쳐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울적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은 혼술을 찾는다. 적적한 마음을 달래려 혼자라서 더 쓰기만한 소주를 털어넣고 또 털어넣는다. 휴대폰 속 친구들의 이름만 돌려보다 끝내 통화버튼 한번 눌러보지 못하고 잠드는 밤. 현대인에게 이보다 지독한 밤이 또 있을까.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공기부터 어두워진다는 노량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다. 오직 시험 하나에 매달려 살아가는 사람들이 거대한 공동체이자 거대한 개인주의를 만들어내는 곳, 이곳만큼 혼술이 위로가 되는 곳은 없다. 그러나 그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건 역시 사람 아닌가.


tvN <혼술남녀>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틀에 갇혀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조금씩 위로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를 바라며, 쉽게 포기하고 실망해버리는 연약한 사람들에게 위로주 한 잔 씩을 돌린 셈이다.

tvN ‘혼술남녀’ 캡처tvN ‘혼술남녀’ 캡처


드라마 상에서 등장인물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소통의 부재다. 지금까지 이 문제는 연애사에 집중됐다. 소심하고 마음 약한 박하나(박하선 분)과 겉으로는 퀄리티를 찾지만 속마음은 정 반대인 외강내유(內剛外柔) 진정석(하석진 분)은 서로의 마음을 단 한번도 제대로 전하지 못한채 겉돌기만 한다.

빨리 결혼하길 바라는 황진이(황우슬혜 분)는 혼전임신에 실패하고 애인 개민호에게 ‘어휴 다행이다’라는 말을 듣자 또 박하나 앞에서 펑펑 운다. 공시생인지 백수인지 구분가지 않는 기범(키 분)은 채연(정채연 분)에 대한 마음을 숨기며 마치 초등학생처럼 꿍시렁대거나 공부하는데 훼방을 놓기 일쑤다.


4일 방송된 10회에서는 이들의 연애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소통 부재를 도마에 올렸다. 성대모사와 10시퇴근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혼술과는 그다지 연결되지 않았던 민진웅(민진웅 분) 교수를 통해 작품은 혼자라는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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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성대모사를 통해 코믹한 인물인 줄로만 알았던 민진웅이 사실은 지독하게 우울한 사람이었다는 점, 10시 퇴근이 아내의 성화 때문이 아니라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기 위함이었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쉽게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임에 틀림없다.

이를 가장 잘 알아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학원 내 앙숙과도 같았던 김원해(김원해 분) 원장이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했던 그가 민교수 어머니의 부음소식을 듣고 지난날을 떠올리며 ‘왜 그걸 진작 알지 못했을까’라며 자책하는 모습은 우리가 회사 상사들에게 가장 바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였다.

문상을 마치고 교수들과 돌아가려던 김원장이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민교수의 손을 어루만지며 ‘오늘밤은 자고 가겠다’는 장면은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알아주는 무언의 위로이자 진심어린 소통의 첫 걸음이었다. 함께하면 고통은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힘들면 사람에게 기대도 된다는 작품의 또다른 핵심 메시지이기도 했다.

tvN ‘혼술남녀’ 캡처tvN ‘혼술남녀’ 캡처


이날 방송에서 진정석과 소개팅으로 만난 여성은 “혼술은 같이 마실사람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 하는 것 아니냐”며 그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작품의 내래이션인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나만을 위한 힐링타임”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이다. 사실 혼술이 힐링인 것도 한두번이지 매번 그러면 외로워지는게 당연하다.

문득 술 한잔이 생각나는 저녁, 눈빛만 봐도 통하는 친구와 만나 말없이 한잔에 추억과 한잔에 사랑과 한잔에 쓸쓸함을 나누고 싶은건 두말해야 잔소리다. 혼술하며 다가오는 외로움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오,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다시 사람에 기대야 풀어낼 수 있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적어도 이날 방송에서만큼은.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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