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연탄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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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1년, 세간에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고 주부들이 밤잠을 설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알고 보니 연탄업자들이 폭리를 노리고 불량 연탄을 공급해 하루 저녁에도 몇 차례씩 연탄을 갈아야 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은 곧바로 연탄제조업체들에 대한 단속을 벌였고 주부들의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업체들이 저질탄 제조를 정부의 가격정책 탓으로 돌리면서 공급 물량을 대폭 줄이는 바람에 오히려 연탄 품귀 현상이 빚어지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치르기도 했다.


연탄은 일찍이 서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집집마다 창고에 연탄을 수북이 쌓아놓고 겨울나기 채비에 들어가야 했다. 어느 집이 더 많은 연탄을 쌓아놓았는지 여부가 부의 척도로 여겨졌을 정도다. 1970년대에는 연탄가스 중독사고로 죽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식구들을 일일이 챙기고 행여 가스라도 마셨다면 마당으로 옮겨 식초와 동치미 국물을 긴급 처방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집 앞에 내놓은 연탄재가 우리네 주택가의 익숙한 풍경이었고 달동네에서는 겨울 빙판길의 미끄럼을 방지하거나 눈사람을 만드는 데 재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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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은 언제나 수급 안정에 어려움을 겪다 보니 정권 차원에서 특별 관리하는 품목이었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연탄 파동에 주부들이 연탄집게를 들고 나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고 연탄 때문에 목이 날아간 관료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잘 나가던 연탄산업은 1980년대 중반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서민 친화 연료라는 점에서 아직도 우리 곁에 소중한 존재로 남아 있다.

정부가 연탄 가격을 7년 만에 20% 인상했다. 판매가격이 생산원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지만 사용 가구가 대부분 서민층이어서 가격을 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서민들의 따뜻한 겨울과 경제원리의 괴리가 크기만 하다. 시인 안도현은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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