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눈에 띄어야 본다, 봐야 친해진다” 신촌에 詩 전문서점 낸 유희경 시인

6월 유행 민감한 대학가에 ‘위트 앤 시니컬’ 오픈

“상권화된 대학가 의미 찾고, 젊은이들 지지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

처음에 말렸던 지인들 ‘해볼만하다’ 응원-매달 꾸준히 1,000~1,200권 시집 팔려

“위트 앤 시니컬이 변화의 작은 점 되길”…11월엔 시 전문 소식지 창간계획



문을 열고 들어서자 생경한 장면이 펼쳐진다. 한쪽엔 테이블 대여섯 개 놓인 카페가, 또 한쪽엔 얇은 책으로 빽빽하게 채워진 책장이 있다. 테이블에 앉아 커피와 맥주를 마시던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리를 옮겨 책장의 책을 꺼내 들춰보고, 작은 책상에 앉아 시집을 필사하기도 한다. 경의선 신촌역사 맞은편, 카페 파스텔 안에 둥지를 튼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의 풍경이다.

“다들 ‘그게 되겠니?’라고 했죠.” 시인 유희경이 ‘시(詩) 전문 서점’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열이면 열 반대였다. 모든 것이 유행따라 나고 지는 대학가에 시라니. ‘돈이 되겠느냐’는 주위 시선은 당연했다. 유 작가는 오히려 신촌이라는 공간에서 기회를 봤다. “신촌 일대가 대학가라는 의미를 잃고 관광객 중심의 상권으로 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트앤시니컬이 오히려 젊은 친구들에게 더 지지를 받을 거라고 봤어요. ‘시’라는 장르의 접점을 넓히고 여러 기획을 모색하는 당위성을 충족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우려했던 지인들도 ‘해볼 만하다’며 응원했고, 그렇게 우려와 기대 속에 문을 연 위트앤시니컬은 입소문을 타고 서점가에 조용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6월 문을 연 이후 4개월째 매달 1,200부 이상의 시집이 팔려 나가고 있다. 통상 출간 시집의 초판 부수가 1,500부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수치다.



고객 중 평소 시를 즐겨 읽는 사람은 3~4할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유 작가에 대한 관심, 기사에 소개된 독특한 서점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곳을 찾는다고. 우연히 왔다가 자신만의 시를 발견하고 단골이 되는 손님이 많다는 이야기다.


‘눈에 띄어야 본다, 봐야 친해진다.’ 유 작가는 위트앤시니컬의 설립 이유이자 인기 요인을 이 한마디로 정리한다. 그는 “시를 안 본다는 것은 시를 만날 기회가 없다는 이야기”라며 “발견성이 현저히 적은 시를 사람들 눈에 띄게 하고, 재밌어 보이게 만들고, 시집을 사든 안 사든 일단 펼쳐보게 하는 것이야말로 위트앤시니컬 기획의 완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위트앤시니컬엔 독특한 이벤트가 많다. 매달 시인 한 명을 선정해 그의 시집을 서점을 찾은 방문객이 필사하고, 필사본을 묶어 시인에게 선물한다. 시인들과 함께하는 유료 낭독회도 열고 있다. “많은 시 낭독회가 있는데, 거의 무료로 진행돼 독자 입장에서는 ‘꼭 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안 느껴지죠. 시집 한 권과 음료를 제공하면서 2만 원에 티켓을 파는데, 매진되면 따로 공지를 해 희소성을 부각해요.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11회 진행된 낭독회는 모두 매진을 기록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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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별한 공간은 독자뿐 아니라 시인들에게도 즐거운 놀이터다. 독자와의 만남은 물론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서점 기획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장 옆에 40여 권의 시집을 게시한 매대를 꾸미는 것을 시인들에게 맡기곤 해요. 얼마 전 오은 시인에게 그 일을 시켰는데, 주황색 표지의 시집으로만 꾸며놨더라고요.”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으로 서점을 굴리고 있지만, 1,500종에 달하는 책을 채워넣고 고객을 응대·상담하며 점포 운영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매출 등을 고민하다 보면 녹초가 되곤 한다. 유 작가가 이른바 ‘서점 다이어트’라고 부르는 고된 노동(?) 탓에 위크앤시니컬 개점 후 몸무게가 8kg 넘게 빠졌다. 그의 말마따나 “재미없으면 못 할 일”이다.

시로 하고 싶은 일은 여전히 많다. 11월엔 시 전문 월간 소식지를 창간할 계획이다. “요즘 문예지에 시 코너가 줄었는데, 소식지에 시 소개나 감상평을 싣고 싶네요.” 문예지에서 벗어나 싱글 음반처럼 4~5편의 시를 엮어 시집을 내는 방식으로 시 포맷이나 게재 영역도 다양화해나갈 계획이다.

유 작가는 ‘시와 친해지는 방법’이 그리 어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시인들이 쓴 산문집을 먼저 읽어보면 그 시인의 시집이 궁금해질 거예요. 학창시절 교과서로 봤던 서정주·윤동주·백석의 작품을 다시 경험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네요. 가장 중요한 것은 위트앤시니컬에 오는 것이겠죠.(웃음)”

/사진=권욱기자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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