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나한테 왜 그랬어요?

[식담객 신씨의 밥상] 스물일곱번째 이야기-죽순



즐거운 점심 시간, 회사 인근 소문난 짬뽕집으로 향했습니다.

지난밤 알코올과 사투를 벌여, 늘 그렇듯 또 패배해 짓이겨졌습니다.


토라진 속을 달래야 합니다.

“이 집 짬뽕은 왜 유명해요?”

선배가 빙긋 웃으며 대답해 줍니다.

“응, 죽순을 팍팍 넣어서 국물이 아주 담백해.”

아, 죽순...

죽순이란 말에 불현듯 중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은 야만의 시대였습니다.

교사들은 매질을 자주 했습니다.

시덥지 않은 이유로 아이들의 따귀에 풀스윙 스매싱을 날렸고, 빗자루 손잡이로 머리통을 가격했으며, 쓰러진 아이들을 발로 짓밟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뉴스에 대서특필할 내용이지만, 그땐 그게 그저 일상일 뿐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수험생에게, 농업은 중요한 과목이었습니다.

200점 만점 중에 무려 20점을 차지했으니까요.

일주일에 농업시간도 3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농업을 맡았던 교사는 좀 독특한 사람이었습니다.

40대 후반에 뚱뚱한 체구를 가진 남성이었는데, 학생들을 그를 뚱배라고 불렀습니다.

수업시간에 교과서를 읽는 둥 마는 둥 때우고, 대부분은 수업과 관계 없는 잡담을 늘어놨습니다.

“내가 그때 깡패들 세 명을 한 번에 날려버렸지, 이 새끼들이 내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데 앞길을 가로막아서...”

“축구하는 애들이랑 레슬링하는 애들하곤 절대 싸우는 게 아니야. 그런데 난 합기도를 해서 그런 놈들도 함부로 못 덤볐어.”

“개고기를 먹을 땐 도마를 깨끗하게 씻고 먹어야 해요. 개고기가 잘 상해서...”

3월에 시작한 학기가 6월이 되도록 수업은 항상 그 꼬라지였습니다.

어느날 1반부터 3반을 맡았던 뚱배 선생님이 출장을 가서, 4반부터 6반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대신 수업에 들어오셨습니다.

수업은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습니다.

내용도 머리에 쏙쏙 들어왔는데, 문제는 우리반 상황이 시궁창이란 걸 알아버렸다는 겁니다.

수업이 끝나고 반 회의가 열렸습니다.

“반장, 우리 이대로 가면 바보되지 않겠냐?”

“그건 맞아. 그런데 담임 선생님도 전근 가서 없는데, 괜히 해코지 당하는 거 아냐? 대우는 좋은 생각 있냐?”

“글쎄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다간 우리 시험 앞두고 시간만 허비하는 거야. 교감선생님한테 얘기하자.”

“그거 너무 세지 않나? 잘못하면 우리가 다치잖아.”

“그래도 하자.”

결국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 반장과 전교 1등 대우, 말발 좀 서는 신대두가 교감선생님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교감선생님은 씁쓸한 표정으로 알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튿날 뚱배선생님의 시간, 반장과 대우와 나는 앞으로 나가 싸가지가 없다며 벌을 받았습니다.

‘원산폭격’, 교실바닥에 머리를 30분 가까이 박아야 했습니다.

다음 시간도 그 다음 시간도 우리는 가혹행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반장과 대우는 빠지고 나만 2주 가까이 벌을 받았습니다.

반장은 어머니가 학교 운영위원이셨고, 대우는 전교 1등이었습니다.


그저 그런 집안에 학교에 찾아올 어머니도 안 계셨던 나는 뚱배의 화풀이 대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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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세 번인 농업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야, 33번. 너 랜드레이스가 한 번에 새끼를 몇 마리 낳냐?”

“잘 모르겠습니다.”

“나와, 이 새끼야. 그런 것도 모르는 새끼가 감히 선생님을 모욕해. 너같이 버르장머리 없는 놈은 아예 학교를 못 다니게 해야 돼!”

교탁 앞으로 끌려간나는 새로운 이유와 반복된 이유로 맞았습니다.

뚱배는 대나무 뿌리로 만든 회초리로 내 머리를 후려쳤습니다.

처음에는 한 다섯 대 쯤 맞고 말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매질을 그칠 줄 몰랐습니다.

‘이 새끼야, 내가 만만해? 니네 집에선 애새끼를 그 따위로 가르치냐?“

머리에 부딪힌 대나무뿌리소리는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까지 이어졌습니다.

뚱배는 매질이 버거운지 시뻘개진 얼굴로 땀까지 삐질삐질 흘렸고, 고통과 절망감에 시달리던 나는 죽고 싶단 생각 충동마저 느꼈습니다.

수업이 끝나자 내 몸은 분노와 공포에 부르르 떨렸고, 붉게 달아오른 눈가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겐 이 상황을 털어놓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버지껜 부담을 드리기 싫었고, 새 담임선생님은 언제 올지 기약도 없었습니다.

결국 뚱배를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뚱배는 씨익 웃었고, 그날 수업시간부터 뚱배는 내 칭찬을 시작했습니다.

”쟤는 공고가 아니라, 공대를 가야 해요. 똑똑한 애는 대학에 가야지.“

”33번은 질문을 참 잘해요. 질문 잘하는 사람이 나중에 크게 돼.“

그렇게 싸가지 없던 인간쓰레기 소년은 하루아침에 질문 잘하는 똑똑한 애로 신분상승했습니다.

대나무 뿌리 매질 30대에 나는 스스로의 신념을 팔아버렸습니다.

일제 시대의 변절자들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할 정도였습니다.

겨우 16살 나이였습니다.

7년이 지나 군대를 마치던 날, 먼저 제대한 대우가 뚱배 소식을 전해줬습니다.

”대두야, 뚱배 죽었대.“

”왜?“

”거기까진 잘 모르고, 아마 병이나 사고겠지.“

어른이 돼서 다시 만나면 꼭 한 마디 묻고 싶었는데...

“말해봐요, 나한테 왜 그랬어요?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집 애라고, 그렇게 개처럼 때려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다니는 것조차 힘든 놈한테 꼭 그렇게 분풀이 매질을 해야 속이 후련했냐!”

“신 과장, 갑자기 멍 때려? 왜, 죽순 싫어해? 표정이 안 좋다?”

“아, 그냥 옛날 생각이 잠깐 났어요. 대나무에 얽힌 기억이 있어서요.”

“하여간 사람 참 기억력 유별나. 안 먹으면 내 그릇에 덜든가.”

“아, 누가 안 먹는대요!”

꾸역꾸역 씹어넘기는 죽순이 왠일인지 씁쓸합니다.

상처가 아물어도 흉터는 오래도록 남는 것 같습니다.



주성분은 당질과 단백질, 섬유소질로 비만을 방지하고, 함유된 칼륨은 염분 배출을 도와 혈압이 높은 사람에게 특히 좋습니다.

뚱배는 죽순은 잘 안 먹었나 봅니다. /식담객 analogoldman@naver.com

<식담객 신씨는?>

학창시절 개그맨과 작가를 준비하다가 우연치 않게 언론 홍보에 입문, 발칙한 상상과 대담한 도전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어원 풀이와 스토리텔링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능통한 15년차 기업홍보 전문가. 한겨레신문에서 직장인 컬럼을 연재했고, 한국경제 ‘金과장 李대리’의 기획에 참여한 바 있다. 현재 PR 전문 매거진 ‘The PR’에서 홍보카툰 ‘ 미스터 홍키호테’의 스토리를 집필 중이며, PR 관련 강연과 기고도 진행 중이다. 저서로는 홍보 바닥에서 매운 맛을 본 이들의 이야기 ‘홍보의 辛(초록물고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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