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송공석 와토스코리아 대표 "이웃집서 5만원 빌려 사업 시작…양변기 부품 1위 올라섰죠"

■ CEO&Story

6일 송공석 와토즈코리아 대표./이호재기자.6일 송공석 와토즈코리아 대표./이호재기자.


●초등학교만 나오고 상경

금형·생산부터 영업·수금까지…부품 독점 공급하며 승승장구




지난 1960년대 서울은 성장통을 겪고 있었다. 시골에서 상경한 소년들은 구멍 난 무명 양말을 신고 보리차로 속을 달래가며 서울 뒷골목 공장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가난을 극복하려는 젊은이들의 열망과 땀이 뒤섞여 서울의 톱니바퀴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 시절 송공석(64·사진) 와토스코리아 대표도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상경했다. 열 여섯 살 소년은 친구가 일하는 화변기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변기 부품을 조립하고 공장에서 플라스틱 금형을 깎고 전통시장 양판점을 돌며 영업도 했다. 5년 동안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내며 서울살이에 익숙해질 때쯤 공장은 갑자기 부도가 났다. 국내에서 화변기 부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회사였는데 회사 대표는 젊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만든 제품을 팔아 주색잡기에만 몰두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실직한 송 대표는 서울역과 광화문 길거리에서 라면박스를 깔고 장난감을 팔았다. 공장에서 석유곤로를 떼다가 양판점에 팔았다. 중국집에서 그릇도 닦았다. 살기 위해 뭔가를 해야 했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도 손에 쥐어지는 돈은 몇 푼이 안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화변기 공장에서 영업을 할 때 알게 된 설비상을 만나게 되면서 송 대표의 인생이 뒤바뀌게 된다. 독점적으로 변기 부품을 공급하던 업체가 없어지자 설비상들은 변기 부품을 구하기 어려웠다. 송 대표에게 재고가 많은 곳을 아냐고 물어보자 송 대표는 “이거다!” 싶었다. 송 대표는 화변기 업체에서 5년간 일하면서 어떤 업체가 재고를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훤히 꿰뚫고 있었다. 그렇게 변기 부품 유통 사업을 시작했다. 그 이후 변기 부품 사업이 성장가도를 달리면서 시골 소년은 상경한 지 50여년 만에 매출액 200억원의 코스닥 상장사 대표가 됐다.

송 대표는 10일 인천 계양구에 있는 와토스센터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나 “처음 들어간 공장에서 금형·생산·조립·배달·영업·수금까지 시키는 대로 다 일했는데 그때는 불만이 많았지만 결국 사업을 시작할 때 큰 힘이 됐다”며 “옆집 아저씨에게 5만원을 빌려 생산 공장을 시작한 게 지금은 자산 700억원대의 큰 회사로 성장했다”고 회상했다.

●바닥 다지며 위기를 기회로

부도때마다 협상가 기질로 극복…현금결제 요청해 외환위기 넘겨



송 대표의 나이 스물 두 살 때 1평짜리 공간에서 남영공업사(현 와토스코리아)가 설립됐다. 밤에는 혼자 부품을 조립했고 아침이 되면 설비상에 물건을 팔았다. 서울은 점점 도시의 구색을 갖춰 갔고 부잣집에서만 쓰던 양변기는 점차 대중화됐다. 초창기 독점 공급자를 대체한 송 대표는 승승장구했다. 시장이 성장하는 데 더 이상 영세하게 혼자서 할 수 없었다. 공장을 키우고 사람을 뽑아 사업을 키웠다. 하지만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최규하 전 대통령을 거쳐 군부가 정권을 장악했다.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세로 돌아서게 됐다. 송 대표는 “시장 성장세가 꼭짓점일 때 대규모 투자를 해서 부품 업체에 물품 대금을 주지 못해 부도가 났다”며 “다행히 은행에 돈을 빌리지 않아 집을 팔고 부품 업체 사장들을 찾아가 앞으로도 장사를 해야 하니 채무를 유예해 달라고 사정을 해 회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3번의 부도가 있었다. 그때마다 송 대표는 특유의 협상가 기질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더 어려운 부품 업체에 먼저 대금을 갚아주고 나머지 업체에는 물량을 더 계약하겠다는 식으로 차분히 빚을 갚아갔다.


그러던 중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터졌다. 고객과 부품업체들이 하나둘 쓰러져 가면서 큰돈을 떼이게 됐다. 송 대표는 IMF 위기를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송 대표는 “IMF 위기가 찾아오니까 당시에 도기를 만드는 대기업에 납품하고 있는 우리 제품의 품질이 시장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면서 “당시는 무자료거래가 태반이라 떼이는 돈이 상당했는데 유통업체들이 물건을 가져가면 현금으로 결제하고 반드시 세금계산서를 끊어달라고 요청해 시장의 유통질서를 다잡는 기회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서도 송 대표의 뛰어난 경영수완이 빛을 발했다. 당시 원부자재 가격이 50% 이상 급상승했는데 와토스코리아는 유통업체들에 12%만 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현금 결제를 요구했다. 3개월 동안은 고객들이 관행에서 벗어나려는 와토스코리아와 한 건도 거래를 하지 않았지만 설비상들이 와토스코리아의 제품을 찾으면서 유통업체들이 송 대표의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부품을 공급해주는 업체들은 외상매출 부실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송 대표가 현금으로 결제하기로 하면서 양변기 시장의 고질적인 유통 질서가 크게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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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대표는 아직도 50%가 넘는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신제품 개발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매년 50~60건의 특허를 출원하고 매년 150개 이상의 특허 권리가 유지되고 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R&D)이 와토스코리아가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 우리가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양변기 대·소 버튼 등 적게 물을 쓰면서 오물처리가 확실하게 될 수 있는 다양한 제품들을 개발했다.

●코스닥 상장 이어 해외로

R&D 앞세워 완제품시장 노크…새 배관시스템·수출비중 확대



최근에는 와토스코리아가 부품을 납품하는 도기업체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완제품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화장실의 층간소음을 없애주는 층상배관시스템을 개발한 것. 아파트 화장실이나 욕실의 물 내리는 소리가 아래층에 고스란히 전달되는 이유가 위층 화장실 배관이 아랫집 천장에 설치돼있기 때문인데 이를 개선해 화장실 벽면에 오배수관을 연결해 층간 소음을 줄이고 시공비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송 대표는 “층상배관시스템에 맞는 양변기를 제작하기 위해 직접 베트남에서 양산 업체를 찾았고 지금은 세계 정상급 욕실업체인 콜러와 함께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현재 확정된 수주만 2만7,000세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비용이 저렴하고 나중에 리모델링도 간편하기 때문에 화장실 배관 시스템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 대표의 비전은 와토스코리아에서 ‘코리아’를 떼는 것이다. 송 대표는 “지금은 수출 비중이 크지 않지만 앞으로는 전 세계인들이 와토스코리아의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것”이라며 “와토스 뒤에 진출하는 국가들의 이름을 붙여 현지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6일 송공석 와토즈코리아 대표./이호재기자.6일 송공석 와토즈코리아 대표./이호재기자.


송 대표는 욕실 산업의 부조리를 개선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중국산 욕실 제품들이 무자료 거래로 탈세를 하며 국내 인증도 받지 않고 유통되고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4년 욕실자재협동조합의 설립을 이끌었고 업계의 목소리를 모으고 있다. 송 대표는 “인증 받지 않는 중국산 제품들이 국내 유통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히면서 국내 욕실자재 생산업체들은 물론 소비자들도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정부도 중국의 불법 제품들을 유통시키는 업체들을 근절시키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천=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사잔=이호재기자

●송공석 대표는

△1952년 전남 고흥 △1966년 전남 고흥 대서초등학교 △1973년 남영공업사 설립 △1997년 와토스코리아 설립, 대표이사 취임 △2001년 고려대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2003년 고입·대입 검정고시 합격 △2006년 중소기업청 신지식인 선정 △2009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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