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인공지능(AI)은 소설이나 공상과학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A.I’에 등장하는 꼬마 인공지능 로봇은 자신을 입양한 엄마를 맹목적이고 순수하게 사랑한다. 피노키오처럼 진짜 인간이 되기를 갈망하다가 마지막에 정말 사람이 돼 단 하루를 엄마와 같이 보내는 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반면에 터미네이터 시리즈에서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AI와 로봇에 맞서는 영웅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소재와 줄거리가 워낙 강렬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로봇이나 AI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만들었다. 대체적으로 영화나 소설에서 기술의 진보나 AI의 미래가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고 또 그런 우려가 근거 없는 것도 아니다.
현실 세계를 살펴보자. AI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편리해지기도 하지만 향후 고객 응대 서비스 분야는 물론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까지 AI가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 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20세 전후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대화서비스를 제공하는 챗봇 ‘테이(Tay)’를 출시했는데, 악의를 가진 사용자가 학습을 시켰더니 인종 차별적 발언을 하는 등의 문제가 생겨 관련 서비스를 불과 하루 만에 내리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AI의 개발이나 운용에 관한 윤리적인 문제가 대두됐다. 또한 페이스북은 얼굴 인식 기능을 좋은 의도로 개발했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유럽에서 서비스가 제한됐다.
이렇게 AI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AI연구에 열을 올리고 있고 기술은 꾸준히 진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AI를 둘러싼 전반적인 인식 제고와 더불어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포괄적이면서도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이 됐다.
지난달 말에 대형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주도로 ‘파트너십 온 에이아이(Partnership on AI)’라는 AI 관련 협력단체가 만들어졌다. 부제를 ‘to benefit people and society’로 해, 사람과 사회를 이롭게 한다고 그 취지를 분명하게 했다. 이 단체는 AI 기술을 대중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해당 기술을 현실에 잘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는 한편, AI가 사람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토론하고 대책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 주요 미션으로는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참여시켜 AI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논의하고 발생하는 이슈들에 대해 적절한 지침을 주는 것으로 하고 있다. AI 연구와 응용 및 서비스에 대해 성·인종·계층·장애 등을 불문하고 윤리·공정성과 신뢰에 바탕을 둔 최고의 실행 규범을 만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AI사용자·개발자는 물론 많은 이해당사자들을 참여시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자는 것이다.
현재 AI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6개 업체인 IBM·딥마인드·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및 구글이 초기 멤버로 참여했으며, 딥마인드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책임자가 임시 공동 의장을 맡기로 했다. 애플, 일론 머스크 및 트위터 등이 참여를 하지 않았지만 결국은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학교나 비영리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이나 정책이나 윤리에 관련된 전문가들도 초빙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AI 연구자들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데 적극적이었고, 오래전부터 이런 모임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비공식적으로 논의돼왔다. 해당 기업들의 대표들도 그 취지에 동의를 하면서 모임이 공식적으로 결성된 것이다. AI 관련 이슈는 특정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었고 어떤 의미에서는 전 인류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기에 이런 단체가 만들어진 것을 적극 환영한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기업이나 학교 등에서도 열심히 참여하고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했으면 한다. 그리고 정부의 정책전문가들도 부서의 경계를 넘어 활발한 고민과 노력이 반드시 있었으면 한다.
이석중 라온피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