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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워킹 스트리트' 어른의 고민을 뒤집어쓴 청춘은 죄가 없다

국내 영화시장에서 청춘이라는 소재는 부정적인 선입견에 찌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섹스, 폭력, 집착, 이로 인한 일탈과 비극적인 최후까지. ‘비트’ 이후 설정은 비슷하되 더 자극적이고 잔인한 작품들이 잊을만 하면 도돌이표처럼 다시 등장한다. 너무 커버린 어른들의 철지난 고민들을 담아내면서 ‘청춘’이란 소재를 사용하는건 분명 비겁한 일이다.

영화 ‘워킹 스트리트’는 ‘방황하는 청춘’이라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배경만 태국 파타야의 환락가 워킹 스트리트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태원이나 종로 뒷골목, 윤락가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청춘영화들을 답습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스크린에 갇힌 어리석은 청년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청춘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돌이킬 수 없는 인생 막바지에 다다른 워킹 스트리트, 이곳에 모인 세 명의 청춘은 제작각 비참한 사연을 안고 있다. 말을 할 수 없는 태성(백성현)은 격투기 선수를 동경하지만 사고뭉치 동생 챙기기만도 버겁다. 태기(이시강)는 꿈도 희망도 없이 방황하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고 형과 함께 태국으로 향한다.

고작 얼마간의 생활비만 챙겨 태국으로 떠나온 그들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난다. 관광객을 상대로 몸을 팔아 살아가는 제나(이송이)는 운명처럼 태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를 알지못한 태기 역시 제나에게 연정을 품는다.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는 막다른길, 워킹 스트리트에 던져진 이들은 예상치 못한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게 된다.



직업을 가질 수 없는 형제, 엄마의 주도 하에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의 최후는 뻔해보인다. 이들이 만나고 엇갈리는 과정이 반복되며 인물의 감정선은 최악으로 흐른다. 그리고 유일한 안식처를 잃게 됐을 때 남은 이의 집착은 처절하면서도 끔찍하다.


개연성이 부족해 이야기의 흐름은 툭툭 끊어진다. 방황을 다룬 청춘영화들이 주로 그랬듯 인물들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한층 심각하게 바라보면 인물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해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렵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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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는건 후반부에 등장하는 이미지에 담긴 메시지다. 클라이맥스는 모든 것을 잃은 자가 유일하게 붙들고 있는 사랑에 대한 집착을 피 한방울 없이도 잔인하게 그려냈다. 안식처와 사랑을 모두 잃어버린 인물의 심리를 날것 그대로 관객 앞에 펼쳐놓는다.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폭발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말없이 작품의 중심 축 역할을 해낸 백성현, 파격적인 노출은 물론 냉소적인 눈빛으로 첫 영화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 이송이 모두 인상적이다. 특히 들개처럼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을 연기하며 시사회 당시 ‘쓰레기’라는 말까지 들었던 이시강의 연기는 놀라울 정도로 리얼하다.

청춘의 방황을 상징하듯 등장인물들이 워킹 스트리트를 걸을 때면 화면은 정신없이 흔들린다. 어지러울 만큼 눈앞조차 볼 수 없는 이들의 현실을 상징하는 듯 하지만 과한면이 있다. “지역 특성상 촬영 허가가 쉽게 나지 않아 일부는 게릴라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상우 연출의 설명처럼 몇몇 장면에서 급하게 촬영한 티가 난다.

청춘을 어리숙한 어른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접을 때가 됐다. 지나친 편견으로 인해 형성된 잔인한 시각은 작품을 파격이 아닌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어른들의 고민을 덮어쓴 청춘은 죄가 없다. 20일 개봉.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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