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 논의를 놓고 12일 하루 동안 새누리당 내 친박 주류와 비주류가 ‘충돌’했다. 이정현 대표는 개헌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점을 강조하며 속도조절에 나선 반면 비주류인 하태경 의원은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이라며 조속한 개헌 논의를 촉구한 것이다. 주류 측은 개헌 논의를 막고 비주류는 청와대의 의지와 정반대로 일제히 공론화하려 드는 분위기다.
이정현 대표는 이날 오전 중국 어선에 의한 우리 해경 고속단정 침몰 사건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인천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부 기자들과 만나 개헌 논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개헌이 가장 잘못된 것은 특정 정권, 특정 정당, 특정 정치인이 주도한다는 것”이라면서 “정략적·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헌법에 함부로 손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개헌을 하게 된다면 특정 세력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각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인데 지금의 개헌 논의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거듭 밝힌 것이다.
하지만 하태경·김성태 의원 등 비주류는 당장 개헌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며 당 주류, 청와대의 뜻과는 반대로 움직였다. 하 의원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제에서는 여소야대가 되면 레임덕 정부가 일상화된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각제 개헌이 필요하고 논의 착수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정치권 개헌 논의에 부정적인 것과 관련, 하 의원은 “청와대의 입장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국가 명운을 생각하면 개헌 논의의 필요성은 눈에 뻔히 보이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앞서 하 의원은 이날 국정감사대책회의에서 “내년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 개헌 논의가 실종되기 때문에 지금이 마지막 타이밍”이라며 “레임덕 없는 정치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개헌 논의 착수를 위해) 청와대도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성태 의원도 개헌론으로 인해 모든 이슈가 덮일 수 있다는 이른바 ‘개헌 블랙홀’ 주장에 대해 “1987년 당시 개헌을 했지만 국가 경제나 서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나빠지지는 않았다”며 적극적인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내년 4월 개헌 국민투표안도 제시했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최근 개헌론을 들고 나오자 청와대는 곧바로 “지금은 개헌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당 안팎에서는 비주류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당내서 목소리를 낼 공간을 만들기 위해 개헌 논의를 먼저 들고 나온 게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된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비박들은 개헌을 통해 당 주류와 대립하면서 숨 쉴 공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박계는 개헌 카드에 이어 친박 핵심과 청와대가 극도로 민감해하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의혹과 비선 실세 의혹을 사고 있는 최순실씨 관련 의혹 등을 놓고도 적극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