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현대문학의 상징이자 반제국주의·탈식민주의 작품을 써 온 응구기 와 티옹오의 대표작 ‘십자가 위의 악마’가 국내 초역됐다. 응구기가 케냐의 지배층을 풍자한 희곡을 집필·상연했다가 교도소에 투옥된 1977년 화장지에 몰래 써내려가 완성한 소설이다. 영어로 활동하던 응구기가 케냐 토착어인 기쿠유어로 쓴 첫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은 케냐 독립(영국 식민지였음) 이후 외국 자본과 이들에 달라붙어 이득을 취하려는 매판 자본가, 그리고 핍박받는 민중의 대결 구도를 그린다. 강자에게 성적·경제적으로 착취당하는 여성 와링가를 중심으로 일을 빼앗긴 노동자 , 땅을 빼앗긴 농민, 진보적 의식을 지닌 지식인 등이 ‘누가 더 민중을 등치고 제 배만 불렸는지’ 겨루는 ‘도둑질과 강도질 경연 대회’를 목격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소설 제목에서 악마는 서구 제국주의를 뜻한다. 민중이 악마를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추종자들이 악마를 다시 내리는 것은 결국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에도 매판 자본가에 의해 다시 들어온 외국자본이 여전히 신식민지배를 이어가는 현실을 비유한 것.
소설 속 지식인 가투이리아는 응구기의 말을 대변하는 듯하다. “우리 문화는 지금까지 서구의 제국주의적 문화에 의해 지배당해왔습니다. 문화제국주의는 정신과 육체의 노예화를 낳았어요. (중략) 우리 민족의 언어가 지금 어떻게 되었나요? 우리의 언어로 쓰인 책들은 다 어디 갔나요? 우리만의 문학은 있나요? 우리 조상들의 철학은요?”
한편 응구기는 김지하의 ‘오적’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오적의 영향은 경연 대회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매판 자본가를 비롯한 지배계급을 대놓고 도둑이라 지칭하거나 그들의 외모를 묘사할 때 동물과 비교하는 등 과장을 사용했다. 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