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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 명작의 뚝심은 여전하네

정신병동에서 직접 만났던 환자들은 모두 자신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믿었다. 모든 여성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는 남자, 출산 중 세상을 떠난 산모 귀신을 본다는 여자, 자신이 고종황제라고 믿는 할아버지.

그들 모두 일반인의 시각으로는 심각한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환자이지만 때로는 그것만이 이들이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사진=극단 아리랑사진=극단 아리랑


연극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의 주인공은 망상 속에서만 행복한 인물이다. 자신이 회장님이라고 믿는 그는 정신병원을 요양원이라고 믿고 환자들에게 100만원짜리 수표를 서슴지 않고 끊어주며 자신이 부자임을 떠벌리고 다닌다.

서울 변두리 작은 이발소의 주인인 조만득은 치매를 앓고 있는 노모와 매번 돈이 떨어졌을 때만 나타나는 동생, 바람난 아내와 살고 있다. 가난한 그에게 필요한건 오직 돈. “돈 돈 돈”을 부르짖는 사람들에 질려버린 그는 결국 현실의 고통을 내려놓고 망상 속 회장님으로 살아가려 한다.

담당의사인 민박사는 그가 망상을 깨고 현실로 돌아가도록 치료한다. 환자의 상황보다 의사의 책무를 중시하는 민박사에 의해 현실세계로 돌아온 조만득은 자신이 정신줄을 놓게 된 과거와 마주하며 절규한다.


결국 돌아온 그를 마주하는건 먼지 쌓인 작은 이발소와 치매가 더욱 심해진 노모뿐. 아내는 집을 나갔고, 동생은 돌아오지 않는다. 결국 비극적인 현실과 또다시 마주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회장님으로 행복했던 망상까지 지운 채 다시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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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극단 아리랑사진=극단 아리랑


‘배꼽춤을 추는 허수아비’는 소설가 이청준의 중편소설 ‘조만득씨’를 각색한 작품으로 1995년 초연됐다. 초연 당시 ‘서울연극제’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것은 물론 제1회 현대연극상 최우수작품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하며 인기와 작품성을 모두 인정받은 바 있다. 이번 공연은 극단 아리랑의 30주년을 기념해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당시 각색, 연출을 맡았던 김명곤은 이번 공연에서 다시 연출을 맡아 눈길을 끈다. 영화 ‘서편제’를 통해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원작자 이청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풀어낼 수 있는 배우로 꼽혔던 그는 이번 공연에서도 자본의 지배아래 놓인 인간의 연약한 정신세계를 적확하게 무대에 구현했다.

70년대 시대상을 90년대에 구현했고, 그 이후로도 20여년이 흘렀으나 작품의 메시지는 굳건하다. 자본에 밀려 추락하는 소시민의 좌절을 이끌어내는 극본의 힘과 조만득을 연기한 한동규를 비롯한 극단 아리랑 배우들의 조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흐름에 감정을 이입하다보면 어느새 돈에 울고 웃는 현 시대에 대한 자조 섞인 쓴웃음이 입가에 맴돈다.

작품은 20일(목)부터 23일(일)까지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에서 공연한 후 무대를 대학로로 옮겨 27일(목)부터 11월 06일(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최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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