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에 가장 무덥고 지루한 여름이 지나갔다. 폭염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한국전력, 전기요금 누진제일 것이다. 세계 유가의 하락과 자원 시장 침체로 연료비 부담이 줄어든 한전은 지난 2015년 사상 최고의 순이익에 이어 올해에도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결과 ‘2016 포브스 글로벌 2,000’ 순위에서 전력 분야 1위의 전력회사가 됐다.
그러나 다른 전력회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독일 최대 전력사인 에온(EON)은 세계 2·3위 회사였다. 매출이 192조원으로 한전의 네 배를 넘은 적도 있다. 그런데 2015년에는 매출 150조원, 순손실 8조원을 기록하더니 시가총액 20조원으로 27위로 급락했다. 프랑스 엔지(engie)와 독일 RWE도 10위권에서 각각 22위, 35위로 추락했다. 이탈리아 에넬(ENEL) 만이 2위를 고수했다.
다만 스페인 공기업 전력회사인 이베르드롤라사는 달랐다. 1901년 수력발전 회사로 시작한 전력회사였지만 2000년대 초 위기에 이그나시오 갈란을 최고경영자(CEO)로 영입한 후 완전히 바뀐다. 2015년 기준 매출액은 약 3,141만유로, 총자산은 약 1억400만유로로 시가총액으로 세계에서 규모가 큰 공익사업체 중 하나다. 갈란이 CEO가 되면서 신재생에 투자하고 사업도 그리스·미국·남미까지 진출했다. 이제는 세계 1위의 풍력발전 회사가 됐고 페르세오라는 벤처캐피털을 통해 에너지 효율과 수요 반응, 스마트 그리드 등 신기술과 신사업 모델에 투자한다.
독일 에온사가 절대 강자를 유지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1990년대부터 전력수요가 포화상태였던 유럽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경제 성장과 전력 수요의 탈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졌다. 정보통신기술(ICT)로 향상된 에너지 효율은 전력수요를 더욱 하락시켰다. 두 번째는 신재생 전원이 늘었고 탈원전 정책이 분명해졌다. 세 번째는 고객 수요를 반영한 다양한 사업 모델이 나타난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전력사들도 나름대로 살기 위해 변화를 추구했다. 중남미 사업을 확장하고 인수합병(M&A)으로 덩치도 키웠다. 가스와 신재생 에너지 사업도 추진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와 분산형 전원이 대세라는 것을 간과하면서 투자 시기를 놓쳐 경쟁력이 약화됐다.
관심은 한전이다. 높은 경쟁력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한전 스스로 변화와 혁신의 중심에 서야 한다. 스마트 그리드, 전기차 충전소와 판매 시장 개방 등 새로운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해외 수출을 추진해야 한다. 해외 시장을 철저히 분석해 우리에게 유리한 곳에 발전사들과 공동 투자하는 것이 좋다. 정부도 정책 지원을 전폭적으로 해야 한다. 해외 사업은 진정으로 세계적 전력 기업이 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세 번째로는 전문 인력 양성과 연구 역량 강화도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한전의 경영을 자율적으로 하도록 책임과 권한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불안하다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출 수는 없다. 밝은 미래를 지키는 것은 변화와 혁신으로만 가능하다. 김정인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