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우리를 다시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16세기 말 임진왜란 직전 일본이 열도 통일을 이루고 명나라를 치겠다며 문약한 조선에 통신사를 요구했다. 조선은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파견한 후 귀국보고를 받고 전쟁에 대비할지, 평화(?)를 유지할지 갈림길에 섰다. 19세기 말에는 물밀 듯이 밀려오는 서양의 파워에 개혁개방을 할지, 쇄국을 할지 기로에 놓였다. 청나라 조공국에서 벗어난 후에는 황제국으로 갈까, 입헌군주국으로 갈까 고민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중요한 시기마다 잘못된 선택으로 굴욕과 굴종과 고난의 세월을 이어왔다.
해방 후 72년. 우리는 다시 엄중한 선택을 요구하는 기로에 섰다. 우리는 두 개의 커다란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동북아에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북핵 문제와, 선진국 도약이냐 후진국 추락이냐를 가를 경제 문제다.
‘국가의 소멸’을 연구한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타니샤 파잘은 그의 저서 ‘국가의 죽음(State Death)’에서 근대국민국가 체제가 성립하기 시작한 1816년부터 2000년까지 184년 동안 207개 국가 가운데 무려 3분의1에 해당하는 66개 국가가 사라졌다고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라진 66개국 중 무려 50개국이 이웃 나라의 무력 공격으로 멸망했다는 것이다.
사상 유래없는 족벌 전제정치로 동포들을 억압하고 있는 북한. 외교관과 군, 보위부, 고위급 엘리트까지 탈북이 이어지고 있고 중국의 탈북 통제가 없다면, 중국의 석유 지원이 없다면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이 예사롭지 않다.
허나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와 미사일이 완벽히 개발돼 실전 배치된다면 남북관계의 게임 체인저로 작용할 수 있다. 동맹국인 미국이 자국과 동일한 수준의 ‘확장억제’ 전력을 지원한다지만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다면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미국은 여론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여서 주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지키지 못하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 핵과 급변사태를 대비하는 플랜A·B를 한꺼번에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반도를 둘러싼 해양·대륙세력의 갈등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정확한 판단, 과감 신속하고도 결단력 있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다른 한편, 경제적으로는 우리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의 전환 위기에 놓여 있다. 세계 7위의 해운을 자랑했던 한진해운이 몰락하고 세계를 주름잡던 조선업체들이 빚덩이에 허우적대고 있다. 우리 경제를 이끌어온 쌍두마차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마저 흔들린다는 우려도 나온다.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아 도산이 우려되는 좀비기업(이자보상비율 1미만 업체) 비율이 올해 2·4분기에 15%로 치솟았다고 한다. 미국의 5%, 일본 2%에 비해 너무 많다.
게다가 IMF 이후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대기업노조의 전횡으로 소득 양극화가 극심해져 국내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다. 격심한 소득격차는 나아가 교육 문제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업을 회생시키고 극심한 남한 내 대립을 해소하며 교육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이중구조 해소에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역대 정권들이 가장 하기 어려웠던 노동시장 개혁의 문제다.
내년은 이 두 가지 위협, 시대의 과제를 해결해줄 지도자, 대통령을 뽑는 선거의 해다. 지도자가 될 사람들도 지도자를 뽑을 국민들도 몰려오는 거센 풍랑이 무엇인지, 무엇에 집중해 돌파해나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지도자는 대안을 내놓아야 하고 국민들은 대안을 살피고 해결할 능력도 갖췄는지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두 난제를 돌파할 추진력과 포용력·결단력을 갖췄는지.
이 시대는 두 핵심과제를 해결해 남한 내의 분열, 한반도의 분열에 종지부를 찍을 리더를 기다린다.
오현환 여론독자부장/hho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