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쏠리던 국내 소비자의 차량 구매 패턴이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이후 가파르게 성장하던 SUV 판매 비중은 올 들어 5년 만에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게다가 지난 1986년 7월 1세대 모델 출시 이후 30년 만에 내수 누적 판매 150만대라는 금자탑을 눈앞에 둔 현대차 ‘그랜저’가 25일 언론을 통해 처음 신형 모델을 공개하면서 세단에 대한 관심은 더욱 뜨거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24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국내 업체들이 판매한 차량(상용 제외) 가운데 SUV가 차지하는 비중은 33.6%로 나타났다. 2011년 19.3%로 바닥을 찍은 뒤 매년 상승해온 SUV 판매 비중이 올 들어 5년 만에 처음으로 꺾인 셈이다. SUV 판매 비중은 2012년 21.8%, 2013년 25.8%, 2014년 27.8%, 2015년 34.1%로 해마다 성장을 거듭해왔다.
SUV의 인기는 레저인구 증가 등 실용성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올해 들어 르노삼성자동차 SM6, 한국GM 말리부 등 세단 신차들이 연이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소비자들의 눈이 SUV에서 다시 세단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실제 올 3월 출시된 SM6는 지난달까지 총 4만503대 판매됐다. 판매를 시작한 후 7.6분에 한 대씩 팔려나간 셈이 된다.
지난해 말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이후 에쿠스 후속으로 출시된 EQ900도 세단의 판매 증가를 이끌었다. EQ900은 올 9월까지 2만400대가 판매되면서 제네시스 플래그십 세단으로서 자존심을 세웠다. G80을 포함한 제네시스 브랜드 전체 내수 판매도 5만대에 달해 프리미엄 SUV 시장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세단 판매 증가 추세는 수입차에서도 엿보인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신형 E클래스를 앞세워 판매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벤츠가 국내에 법인을 설립한 후 최초로 연간 수입차 판매 1위 자리를 올해 노리고 있는 것도 세단의 인기가 큰 몫을 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판매 상위 5개 모델은 전부 세단이 차지했다. 10위 안에 포함된 SUV는 단 2개 모델에 불과하다. 올 1월 국내 수입차 시장 판매 순위 1~5위 안에 포함된 차종 가운데 SUV는 폭스바겐 티구안, 벤츠 GLC 220d 4MATIC, 포드 익스플로러 2.3 등 총 3개 차량이나 이름을 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다음달 15일께 출시 예정인 현대차 신형 그랜저가 본격적으로 판매되면 세단이 차지하는 비중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130년 동안 이어진 자동차 역사에서 세단이 항상 중심에 있었다”면서 “SUV 판매가 당장 급격히 감소하진 않겠지만 세단의 공세 속에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1986년 1세대 모델이 출시된 그랜저는 지난달까지 총 148만대가량 판매됐다. 준대형급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쏘나타·아반떼에 이어 연내 150만대 판매 고지를 눈앞에 뒀다.
25일 미디어 프리뷰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신형 그랜저는 그동안 이어오던 그랜저의 전통에서 벗어난 ‘완전히 새로운 그랜저’를 표방한다.
그랜저라는 이름 뒤에 붙던 XG·TG·HG 등 세대별 구분을 이번 신형에서는 없앤다. 30년 만에 다시 ‘그랜저’라는 이름으로 출시되는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그동안 1~5세대까지 이어오던 그랜저에서 완전히 구분되는 새로운 그랜저의 탄생을 어필할 계획”이라면서 “6세대 그랜저가 아닌 오직 ‘그랜저’로 공개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11년 이후 5년 만에 새롭게 탄생하는 그랜저는 8단 자동변속기가 장착된다. 또 제네시스 차량의 지능형 안전 운전 지원 기술인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등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아울러 현대차는 그랜저의 타깃층을 30대 고객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1일 네이버 TV캐스트를 통해 공개한 웹무비 ‘특근’으로 차량을 공개하는 전략을 세웠다. 현대차그룹 광고계열사 이노션이 투자에 참여한 ‘특근’은 배우 김상중·김강우·주원이 출연하고 괴생명체가 점령한 대한민국을 특수 요원들의 반격과 사투를 그린 SF 추격 액션 블록버스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