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전격 제안으로 24일 개헌 논의가 시작됨에 따라 이번 기회에 헌법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개헌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권력구조 개편이다. 그러나 정치체제만 바꾸는 ‘원포인트’ 개헌에 그칠 게 아니라 이왕 국민적 에너지를 쏟아부을 거라면 새로운 시대의 요구를 반영해 헌법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헌법은 국가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가 반영돼 있다. 이 때문에 헌법은 국가의 미래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헌법적 가치가 국가 거버넌스의 중심 축”이라면서 “경제적으로는 국민 소득 3만 달러에 맞는 헌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증현 전 장관은 또 “지금까진 민주화·산업화를 통해 이만큼 왔지만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국정 전반의 틀을 바꿔야 한다”면서 “대통령 임기나 권력구조뿐 아니라 인권·복지·사회지배구조 등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제 분야는 더 강한 개정 요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 제9장 ‘경제’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개헌 논의에서 보다 경제 발전과 양극화 해소, 더 나아가 미래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한 사립대 교수는 “현행 헌법은 경제력 집중에 대한 규제와 조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가 있다”면서 “경제주체의 자유를 보다 강조하는 방향이 돼야 미래의 모순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도 너무 추상적이라는 지적이다. 현행 헌법은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지나치게 모호하다는 의견이 많다. 통일의 방향, 이를 위한 대통령과 정부의 노력이 구체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 기본권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박 대통령이 이날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의 급격한 진입으로 한국 사회의 인구지형과 사회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고 다양한 가치와 목표가 혼재하는 복잡다기한 사회가 됐다”고 말함에 따라 노인의 권리가 헌법에 추가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저출산 극복에 의지 또한 헌법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외교 분야에서는 장기적인 국익을 최우선 목표로 삼되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과학계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보다 강조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현행 헌법은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는데 과학기술 발전을 국가의 기본 목표 중 하나로 격상시켜 헌법에 명문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과학입국’의 의지를 헌법에 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온다.
야권의 지방자치단제장들은 이번 개헌에서 지방자치 시대를 천명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미 “헌법에 지방분권 시대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2개에 불과한 지방자치 조문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역시 야권의 대선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비슷한 입장이고 이재명 성남시장 또한 풀뿌리 지방차지가 민주주의 기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권은 헌법 전문에 있는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의 수정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권은 한국의 뿌리를 1948년 정부 수립으로 봐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고 4·19 의거로 하야한 이승만 전 대통령 또한 공산화를 막은 공(功)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