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언뜻 국제사회의 골칫덩이로 보이는 그가 취임 이후 지난 4개월간 외교무대에서 거둔 성과를 되짚어보면 평가는 사뭇 달라진다. 거침없는 태도로 미국·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의 애간장을 녹이면서도 확실하게 군사·경제적 이득을 얻는 실리외교를 펴는 그를 놓고 일각에서는 막말조차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NHK에 따르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6일 두테르테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양국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겠다”며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중국과 분쟁 중인 남중국해 연안 경비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대형 순시선 2척과 해상자위대 연습기 TC-90를 필리핀에 대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으로서는 아시아에서 미국의 대리인 격인 일본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군사적 지원을 최대한 얻어낸 셈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일본의 지원을 약속받고 “우리는 평화를 추구하며 법의 지배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며 “항상 일본 편에 설 것”이라고 화답했다.
하지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불과 일주일 전인 20일 시 주석과 만나 “지금은 (이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적합한 때가 아니다”라며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대신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적극 드러내며 중국과 135억달러 규모의 투자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분쟁지역인 스카보러 암초(중국명 황옌다오)에서 필리핀 어선 조업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연내 러시아 방문 의사를 밝히며 대러 관계 진전도 노리고 있다. 그는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면 “이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나와 푸틴 대통령, 시진핑 주석 세 명밖에 없다고 말하겠다”며 방문 기대감을 높였다. 이에 대해 이고리 호바예프 주필리핀 러시아대사는 필리핀 GMA방송에 출연해 “필리핀이 러시아에 기대하는 어떤 지원도 마주앉아 논의할 것”이라며 두테르테 대통령의 러브콜에 즉각 화답했다.
친미를 고수했던 과거 정권과 달리 철저하게 실리를 챙기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외교 스타일에 미국은 긴장하고 있다. 남중국해 분쟁 당사국이자 미군 주둔국가인 필리핀을 기반으로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외교전략이 삐걱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외교가에서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의도가 외교전략의 장기 변화를 의미하는지, 강대국 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인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미 외교전문지 디플로맷은 “미국이 제대로 된 패를 내놓는다면 두테르테 대통령도 자신의 작전이 무엇인지 내보일 것”이라며 “상황이 해결되면 미 정부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필리핀이 다시는 이런 전략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