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기로에 선 K바이오] 바이오 육성 주체·예산 집행 중구난방...'범정부 컨트롤타워' 시급

<4,끝>구호만 요란...사라진 게이트키퍼

제약강국 가려면 정보·기술 공유 생태계 필요한데

기초-임상연구·인허가·R&D 투자 등 관리 제각각

지자체·협회 주도권 경쟁에 클러스터 활성화 발목

"숟가락 얹기 중단하고 장관급 주도 장기플랜 짜야"

신약개발에만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고 비용도 최소 2,000억원에서 최대 4조원에 이른다. 이 같은 구조 때문에 연구개발(R&D) 부문에만 수조원을 쏟아부을 수 있는 글로벌 업체들이 전 세계 제약산업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세계 시장 점유율이 1%대에 불과한 국내 바이오제약업체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기간에 글로벌 제약사를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대학과 같은 연구기관, 벤처, 제약사, 대기업들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룰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 신약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최근 신약개발이 서로 간 정보 공유와 기술이전 등을 통한 ‘오픈 이노베이션’이 대세인 만큼 후발주자로서 이 같은 생태계 조성을 통한 ‘패스트 팔로잉’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국내 바이오업계의 영세성을 감안하면 결국 큰 그림은 정부가 만들 수밖에 없다. 미국·일본·영국과 같은 제약 강국들마저 정부가 바이오 생태계 조성을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도 정부가 장관급 이상이 수장을 맡은 범정부협의체(컨트롤타워) 설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이 지난 10일 오후 인천광역시 연수구 미추홀타워에서 열린 제3회 바이오특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바이오 산업 소관 부처가 많은데다 주요 산업군 중 가장 호흡이 길다는 특성을 감안해 장관급 이상이 수장을 맡는 범정부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미래창조과학부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이 지난 10일 오후 인천광역시 연수구 미추홀타워에서 열린 제3회 바이오특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바이오 산업 소관 부처가 많은데다 주요 산업군 중 가장 호흡이 길다는 특성을 감안해 장관급 이상이 수장을 맡는 범정부협의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제공=미래창조과학부


◇컨트롤타워 없는 한국 바이오=후발주자로서 앞선 경쟁자를 빠르게 따라잡으려면 선택과 집중 전략이 중요하다. 문제는 정부의 바이오산업 육성책의 얼개는 이 같은 전략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우선 산업 육성 추진 주체가 중구난방이다. 기초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 중개임상연구는 보건복지부, 제품화 연구는 산업통상자원부, 인허가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리하다 보니 외국과 같은 긴 호흡을 갖고 정책을 만들어가기 힘들다. 바이오 관련 R&D 예산 또한 복지부·산업부·미래부·농림축산식품부 등의 부처가 나눠 집행한다.


정부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3월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산하에 미래부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한 ‘바이오특별위원회’를 설치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명확하다. 지금까지 세 차례 회의를 진행했지만 아직 밑그림을 그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관련기사



실제 3월 열린 1차 회의는 바이오 중기전략 수립 및 바이오 R&D 투자 포트폴리오를 마련하자는 구호 전달 정도에 그쳤다. 5월 열린 2차 회의에서는 800억원을 들인 펀드를 만들기로 했지만 규모가 기대치에 모자랐다. 이달 열린 3차 회의에서는 ‘우수기업 연구소 지정제’를 도입해 오는 2025년까지 모범 연구소 1,000개를 집중 육성하기로 했지만 위원회 위상을 감안하면 지속 가능성에 물음표가 제기된다.

반면 다른 주요 국가는 바이오헬스 R&D 예산 집행기관을 일원화하는 등 장기적인 청사진을 갖고 접근 중이다. 미국의 경우 국립보건원(NIH)이, 싱가포르는 과학기술청(A*STAR)이 각각 바이오 관련 예산을 주무르며 산업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가 외부연구 부문을 전담하며 기초연구, 중개임상, 제품화 연구를 전 주기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갖췄다. 영국은 민간인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의료연구전략조정국(OSCHR)을 만들어 보건부 산하의 국립보건연구원(NIHR)과 산업혁신기술부(BIS) 산하의 의료연구회(MRC) 간 R&D 예산을 조정하고 있다. 한 제약사 선임연구원은 “차관이 수장인 위원회 정책이 얼마나 일관성을 가질지 의문”이라며 “바이오산업은 한 번 호흡이 끊기면 지속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컨트롤타워를 일원화해 추진력을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클러스터와 협회도 중구난방=지방자치단체 및 협회들의 주도권 잡기 경쟁도 바이오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바이오 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는 기존의 인천 송도와 충복 오송 외에 경기 판교의 바이오 클러스터, 경북 의료산업 클러스터, 대덕 연구개발특구, 원주 의료기기 클러스터, 서울 홍릉의 바이오의료 클러스터 등 국내 바이오 관련 클러스터는 한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정도다. 바이오 생태계는 연구 중심의 병원과 다양한 실험이 가능한 바이오벤처, 상업화에 능한 대형 제약사 간 협업이 기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와 같은 구도는 시너지를 내기 힘들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연구중심병원을 중심으로 한 바이오메디컬 클러스터에 R&D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싱가포르 또한 지난 15년간 총 270억달러를 투자한 ‘바이오폴리스(Biopolis)’를 통해 클러스터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관련 협회 난립도 바이오산업 육성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약협회(복지부), 바이오협회(산업부), 바이오의약품협회(식약처) 등은 주무부처가 서로 다른데다 최근 제약협회가 ‘바이오’라는 명칭을 도입하려 하자 다른 협회들이 반발하는 등 제 몫 챙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열풍은 지난해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대박 이후였다는 점에서 추가 기술수출 사례가 나오지 않으면 언제든 꺼질 수 있다”며 “서로가 숟가락 얹기 식으로 대응할 경우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마련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양철민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