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촉발된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국가 리더십의 존립 기반이 송두리째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따라 각계에서는 정치·관료 시스템의 근본적 혁신 없이는 대한민국호(號)가 난파할 수 있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시발점으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현 정권의 남은 임기 동안 경제·안보 현안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도출해야만 국가를 위기의 수렁에서 구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원로와 각계 전문가들은 26일 서울경제신문이 진행한 긴급 인터뷰에서 ‘국가 리더십 회복을 위한 5대 과제’로 △정확한 진상규명 △진정성이 담긴 대통령의 사과 △청와대 참모진 및 여당 지도부 총사퇴 △내각 전면 개편 △남은 임기 동안 경제·안보위기를 돌파할 성과 도출 등을 제시했다.
이날 서울경제신문이 접촉한 인사들은 한목소리로 국정붕괴 사태에 대한 참담함을 토로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너무 신경질이 나서 어떤 이야기도 차마 할 수가 없다”고 말을 아꼈고 김용갑 새누리당 상임고문은 “국민들이 배신을 당했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고 개탄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도 “너나 할 것 없이 국민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일어났다. 말하기조차 민망하고 피곤하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같은 침통한 심정에도 불구하고 이들 전문가는 각 분야에서 쌓은 혜안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사과를 제대로 된 사과라고 받아들이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되물은 뒤 “의혹 해소를 위한 사과가 다시 한 번 필요하고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전면 개편이 뒤따라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특별검사제를 통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이뤄내야 국민의 상처가 아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한 전 의장도 “대통령 수사와 탈당 등 모든 방안을 총동원해 무너진 국가의 체면을 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정대철 국민의당 상임고문 역시 “현재 밝혀진 내용만 해도 탄핵 수준에 이르는 행태”라며 “내각 총사퇴는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정직한 자기 고백으로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전직 관료를 비롯한 경제 전문가들 또한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위기극복을 위한 다양한 고언(苦言)을 들려줬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현 정부가 벌여놓은 여러 가지 정책 중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못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라며 “규제개혁이든 노동개혁이든 국회와 국민을 설득해 유의미한 성과를 하나라도 남겨야 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강봉균 전 경제부총리도 “(국정농단 사태와 별개로) 임기 4년차에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며 “현실적으로 임기 마지막까지 가장 중요한 정책 몇 가지에만 집중해 결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준 전 대통령 정책실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실질적인 청와대 견제가 이뤄지도록 당의 정책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진단했고 익명을 요구한 전직 관료는 “대통령이 비상한 각오로 측근들을 모조리 청와대·내각에서 내보내고 능력 있고 경험 많은 관료를 주위에 포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관료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포퓰리즘 성격이 짙은 대증요법이 득세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세원·나윤석·박형윤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