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활

[김영란법 한달...심상찮은 내수]직원 자르고 업종 바꾸고...생존 몸부림치는 자영업

요식·화훼·인쇄업 매출 급감

거리 내쫓긴 종업원 생계 위협

관련 납품업체들도 줄도산 위기

서울 용산구청 인근 이태원 의류매장 골목이 방문객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신희철기자서울 용산구청 인근 이태원 의류매장 골목이 방문객이 없어 한산한 모습이다./신희철기자


“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매출이 급감했는데 임대료 등 고정비용은 그대로여서 인건비 부담에 결국 직원 3명을 내보냈습니다. 모두 중고생 및 대학생 자녀를 둔 40대 중후반 주부였습니다. 특히 한 직원은 올해 대학에 입학한 자녀 학비를 마련 중이었는데 아직 새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서울 종로구 인사동 A한정식 지배인)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 한 달 만에 요식업·인쇄업·화훼업 등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매출 급락을 견디지 못한 사업자가 직원 해고라는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수경제의 한 축인 이들이 당장 지갑을 닫아버리면서 김영란법 적용과 거리가 멀어 보이던 업종들까지 연쇄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다.

대표적으로 요식업계의 경우 매출 하락이 직원 해고 및 납품업체 타격으로 이어지는 ‘김영란법발 연쇄 도산’이 본격화했다. 서울 인사동 B한정식집은 최근 30년가량 일해온 직원을 해고했고 C한정식집은 업종 전환을 위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인사동·청운동·수송동 일대 100여개 한정식 중 40여곳은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로 나왔다. B한정식 직원이었던 박모씨는 “인생의 절반을 보낸 가게인데 문을 닫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아 좀 더 어린 직원들을 생각해 자진해서 나왔다”며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는 아내를 도와 벌이를 이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남은 직원들도 제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고 재료를 납품하던 육류 및 채소가게들의 사정도 어려워졌다”고 실상을 전했다. 이 같은 충격은 대기업으로까지 전해지고 있다. 식자재사업을 하고 있는 식품 대기업 D사 대표는 “김영란법 이후 매출이 20%가량 추락했다”며 “현재로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허탈해 했다.


요식업과 함께 김영란법 피해업종으로 손꼽히던 화훼업계나 인쇄업계도 줄도산 우려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반응이다. 특히 화훼업계의 경우 결혼 및 교직원 인사 시즌임에도 한 달가량 매출이 제로인 업체가 많아 당장 직원 월급 지급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 강동구 성내동의 화훼업체 대표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반토막 났는데 10명에 달하는 직원 월급을 개인통장에서 꺼내서 주게 됐다”며 “난의 경우 선물의 80%가량은 돌려받는 상황이라 도·소매 수요가 없다 보니 수개월씩 난을 가꾼 농가들은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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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쇄업계 역시 기업 사외보 제작 중단이 잇따르면서 편집·디자인·인쇄·제지업체 등이 동시 타격을 입고 있다. 이참에 오프라인 사외보뿐 아니라 사내보까지 모두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탓이다.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편집디자인 전문 W업체 관계자는 “보통 이맘때는 내년 신규 사보 제작물량이 나오고 이에 입찰하는 시기인데 신규사업이 단 한 건도 없다”며 “내년도 수입 계획을 세울 수 없는데다 거래하고 있는 인쇄업체에도 일감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절망했다.

고급 주류 시장과 숙취해소음료 시장도 김영란법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대형 도매주류업체 관계자는 “연말 위스키 성수기에 접어들었지만 지난 한 달간 거래업체의 위스키 주문량이 지난해보다 20% 정도 줄었다”며 “위스키 시장은 매해 감소세였는데 김영란법으로 올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한 숙취해소음료업체 관계자 역시 “편의점을 통한 매출이 대부분인데 평균 10% 후반대를 유지하던 매출 성장세가 법 시행 이후 한자릿수로 고꾸라졌다”며 “회식 자리가 줄어든데다 술을 마시더라도 가볍게 마시고 끝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김영란법 후폭풍이 업계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 소비심리 위축과 밀접한 업종들까지 피해가 확산되는 모습이다. 김영란법의 직간접적 타격으로 소득이 감소한 이들이 쇼핑·미용 등 당장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부분에서 지갑을 닫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A의류업체 대표는 “이태원 소매점과 동대문의 도매점까지 운영하고 있는데 신상품을 사입하려는 매장 점주들이 한 달 새 50%는 줄었다”며 “워낙 경기가 안 좋은 탓도 있지만 김영란법 이후 주 고객이던 개인사업자나 주부들의 방문이 급격히 줄어든 탓도 크다”고 말했다. 국내 한 대형 프랜차이즈 헤어업체 대표는 “내수경기를 얼어붙게 하는 정부정책이 있을 때마다 파마까지 하려던 고객이 커트만 하는 등 미용업계 매출은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당장 눈에 보이는 김영란법 관련 피해자뿐 아니라 이와 연관된 업계 관계자 모두 내수경기의 소비주체라는 점에서 심각한 경기침체가 우려된다”고 예상했다.

/신희철·이지윤기자 hcshin@sedaily.com

신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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