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우리시대 화랑들을 기대하며

박창명 병무청장



신라와 백제가 나라의 명운을 걸고 격돌했던 서기 660년. 나당연합군의 공세에 맞서 백제는 계백을 중심으로 한 5,000 결사대가 황산벌에 나섰다.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앞세운 나당연합군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비장한 각오로 전투에 나선 백제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요지를 차지하고 결사항전에 나선 백제군 앞에서 신라는 전투 초반 힘을 쓰지 못했다. 처음 네 차례의 전투는 모두 백제의 승리로 돌아갔다.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신라군의 부장 품일은 자신의 아들을 불렀다. 싸움에서 모범을 보일 것을 요구하는 아버지의 독려에 아들은 홀로 적진에 뛰어들었으나 곧 백제군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계백은 비록 적이지만 아직 어린 병사의 용맹에 탄복해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적장을 죽이고 오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긴 그는 다시 적진으로 돌진했다가 적군에게 사로잡혔다. 계백은 이번에는 소년의 목을 베어 말안장에 매달아 보냈다. 결기에 가득 찬 소년은 화랑 관창이었다. 이때 그의 나이 열여섯이었다.


그 후의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목숨을 돌보지 않는 관창의 분전에 고무된 신라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총공격에 나서 백제군을 대파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앞서 또 다른 신라 장군 흠춘의 아들이었던 반굴 역시 아버지의 명을 받고 자원해서 앞장서 싸우다 전사했다. 어린 화랑들의 용기가 침체된 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려 전세를 뒤집고 승리를 이끌어낸 원동력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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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무용(武勇)은 1,00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도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웅변하는 귀감으로 전해진다. 아들을 사지(死地)로 내몰면서까지 리더로서의 솔선수범을 강조한 아버지의 가르침이 우러러보이고 목숨을 던져가면서 귀족으로서 명예를 지키려 한 후대의 실천 역시 존경스럽다. 이들이라고 부정(父情)이 남다르지 않았을 리 없고,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닐 터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 지도층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병역 문제에 관한 한 관창과 젊은 화랑들이 보여준 모습과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제 받은 고위층 자제들이 일부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다. 병역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국적마저 버린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 속에 지도층에 대한 존경이 자리 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묵묵히 군 복무를 마친 젊은이들과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들로서는 실망을 넘어 박탈감을 느낄 만하다.

병역 의무에 예외가 있을 수 없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병역을 면제 받았다고 일방적으로 병역회피자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 질병이나 생계 곤란 등 정당한 사유가 있어 병역을 이행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지도층으로 국가에 봉사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 성실하게 병역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병역 문화가 지도층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선진국 진입을 앞당기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박창명 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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