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해외칼럼]좋은 경제 몰아내는 나쁜 정치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

장기간 이어진 저성장·불평등에

브렉시트 등 비합리적 선택 등장

깨어 있는 정치 지도자가 앞장서

잘못된 궤도 수정할 수 있기를






정치와 경제의 관계가 바뀌고 있다. 선진국 정치인들은 장기화하는 저성장과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놓고 점차 확산하는 경제적 합의(컨센서스)를 따르는 대신 이상하고 때로는 해롭기까지 한 갈등에 매여 있다. 선진국들을 구조적으로 불구로 만들고 신흥국 경제를 휩쓸어버리기 전에 이러한 추세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정치적 내분은 분명 새로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전문 경제학자가 주어진 정책에 대한 기술관료적 합의에 도달한다면 정치 지도자들은 이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때로 급진적 정당들이 다른 의제를 밀어붙이려 할 때도 주요7개국(G7)의 도덕적 권고나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의 대출 조건 같은 강력한 힘이 작용함으로써 결국은 합의에 따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예를 들어 지난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미국부터 여러 신흥국 경제권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무역 자유화, 민영화, 금융 규제 철폐 등을 추구하는 이른바 ‘워싱턴 합의’가 정책을 지배했다. 많은 다자기관에 의해 워싱턴 합의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경제·금융 세계화를 향해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면서 이러한 추세를 확산시켰다.


그러나 이례적인 저성장과 불평등이 수년간 이어진 후로 합의는 무너지고 있다. 선진국 시민들은 경제 전문가와 주류 정치 지도자, 지배적인 다국적 기업 같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경제적 고통을 초래했다고 비난하며 좌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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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反)제도권 운동과 인사들은 지지를 얻기 위해 자극적이고 심지어는 호전적인 언변을 구사하며 이러한 좌절을 빠르게 잠식해갔다. 이들은 정치와 경제 사이의 전달 메커니즘을 방해하기 위해 선거에서 승리할 필요도 없었다. 영국은 6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투표로 이를 증명했다. 브렉시트 결정은 유럽연합(EU)에 남는 것이 영국의 가장 큰 이익이라는 경제적 합의를 직접 거부하는 것이었다.

이제 수문이 열린 것처럼 보인다.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와 내각 장관들의 연설은 지금까지 경제를 잘 돌아가게 해준 무역협정을 폐지하는 ‘하드 브렉시트’ 추진 의도를 드러냈다. 연설문은 심지어 국민투표 후 영국 경제를 안정시켜 메이 총리의 새 내각에 논리정연한 브렉시트 전략을 만들 시간을 준 영국중앙은행(BOE)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몇몇 다른 선진국 경제에서도 유사한 정국이 벌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가 대선에서 진다고 하더라도 그의 출마는 미국 정치에 오랜 충격을 남길 것이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지지층을 공고히 하기 위해 오는 12월 실시하는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 역시 잘 관리되지 않는다면 정치적 분열을 초래하고 경제 위기 대응책의 토대를 흔들 것이다.

견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책들은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다. 실수해서는 안 된다. 그저 그런 경제 성과가 수년째 이어지면서 이제 비전통적 통화정책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데 광범위한 합의가 이뤄지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가 지적했듯이 중앙은행이 동네의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이 돼서는 안 된다.

하지만 아직은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성장 친화적인 구조개혁과 보다 균형 잡힌 수요 관리, 국가 간 정책 공조 등 더 포괄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 과도한 부채도 관리해야 한다. 장기간 계속된 그리스 위기에서도 나타났듯이 이는 당사국에 미치는 직접적 피해를 넘어 다른 국가에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새로운 합의의 출현은 좋은 소식이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적 상황에서 합의를 행동에 옮기는 작업은 기껏해야 극도로 느리게 진행될 것이다. 문제는 나쁜 정치가 좋은 경제를 몰아내면서 대중의 분노와 좌절이 고조되고 이것이 정치를 더욱 해롭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깨어 있는 정치 지도자가 경제 및 금융 위기의 뚜렷한 신호가 보이기 전에 고삐를 쥐고 궤도를 수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자문

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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