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과잉의 덫'에 빠진 철강 업계가 고강도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최근 서울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중국의 공급과잉 문제는 시진핑 주석도 해결하지 못한다. 포스코는 더 이상 국내에서 고로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기로에 놓인 한국 철강 업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11일 철강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의 조강 생산량은 56%나 폭증했다. 중국발(發) 공급과잉으로 전 세계 철강 산업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량공세를 앞세운 중국산 저가 철강제품은 공급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밀어내기식 수출을 강행하며 주변 국가인 한국은 물론 유럽 철강 업체들까지 파산 직전으로 내몰고 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통상 관련 장관들은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경쟁이사회(COMPET)' 긴급회의를 열고 중국산 저가 철강 수입으로 고전하고 있는 유럽 철강 업계에 대한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한국 철강 업계 역시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간 동부제철은 매각작업에 돌입한 상태다. 권 회장이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동부제철 인수는) 생각도 안 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동부제철의 새 주인 찾기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졌다. 동부제철 당진 공장을 따로 떼어 내 포스코나 현대제철에 매각하는 방안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두 회사 모두 현 상황에서 인수 결정을 내리기 부담스럽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산업을 재편하려는 움직임도 시장을 헤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이 팽배해 쉽지 않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 역시 "특정한 기준에 따라 무 자르듯 기업을 분류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업종과 국내 시장환경에 따라 각 기업의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동국제강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일단 내년까지 유동성 위기는 해소했지만 여전히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생산량을 조절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한계기업이 정리되는 식으로 사업이 재편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포스코가 직접 개발한 '파이넥스' 공법을, 현대제철은 초고장력 강종 개발 등 제품 경쟁력 확보를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포스코가 상용화하고 세계 각국에 기술수출을 진행 중인 '파이넥스' 공법은 환경친화적인 장점은 물론 원재료 조달이 용이해 대표 새 먹거리로 꼽힌다. 권 회장은 "파이넥스는 500년 동안 이어온 용광로법을 대체하는 우리 고유의 기술"이라며 파이넥스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현대제철은 최근 초고장력 강판을 확대적용하는 차량이 늘면서 관련 제품 개발에 힘쓰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야심 차게 출시한 제네시스 'EQ900'에도 최초로 설계 단계부터 현대제철의 초고장력 강판이 적용돼 현대차의 향후 자동차 제작 방향성을 제시했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초고장력 강판을 비롯해 원가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품으로 현재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중국도 정부가 나서 환경규제를 강화하면서 기준에 맞지 않는 설비를 제거하는 등 공급량 줄이기에 나선 모습이다. 구조조정의 효과를 보는 데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지만 현재 중국이 생산하는 철강재의 40%가량이 과잉생산되고 있는 만큼 고강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일본의 조강 생산력은 10년간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얼핏 보면 그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중국이나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 한국과 비교해 크게 못 미쳐 보인다. 하지만 '공급과잉의 덫'에 빠진 현주소를 살펴보면 일본의 고강도 구조조정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 수 있다. 송재빈 한국철강협회 부회장은 "일본의 조강 생산량이 지난 10년간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은 업계 스스로 설비 확대보다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는 증거"라며 일본 철강 산업의 경쟁력 회복을 한 발 빠른 구조조정의 결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