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회·정당·정책

"최순실 사태 해결 위해선 국민 참여 전제로 한 근본적 개혁 뒤따라야"

이진순 와글 대표…국내 최초 정치 스타트업 '와글' 통해 시민 참여 정치 실험

국민참여 캠페인 '미래세대 긴급 토론회(가칭)' 오는 7일 온오프라인에서 동시 개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들의 분노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제안하는 해결 방안을 살펴보면 국민 참여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있어요. 대통령 탄핵이 됐던, 거국중립내각이 됐던 국민의 참여를 전제로 한 근본적인 개혁을 담아야 하는데, 정치권은 ‘그들만의 잔치’에 머물고 있는 거죠.”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와글’의 이진순(53·사진) 대표는 31일 성수동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최순실 사태로 인한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말문을 열었다. 경제 벤처 스타트업은 익숙하지만 정치 스타트업은 우리 사회에 낯선 개념이다. 위선적 정치를 타파하고 우리 시민이 정치를 통해 주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바꿔나가는 플랫폼을 만들어가자는 정치 벤처다.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인 이 대표는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을 지냈으며 학생 운동을 하다가 감방 신세를 졌다. 방송 작가를 하다 미국으로 건너가 럿거스 대학에서 ‘인터넷 기반의 시민운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올드도미니언 대학 교수로 시민저널리즘을 가르쳤다.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새로운 형태의 시민 참여 정치를 꿈꾸다 지난해 정치 스타트업 ‘와글’을 설립했다.

기자는 이 대표에게 최순실 사태로 대통령 하야까지 거론되는 현 상황에 대한 진단부터 요청했다.

“국민들이 자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시적인 감정이나 분노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잘 하고 있는데 이번 사건 하나로 국민들이 화가 난 게 아니라, 친인척 비리에서 자유롭게 경제 문제를 잘 해결할 것으로 기대해서 뽑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죠. 현 정부 들어서 청년실업문제는 더욱 심각해지면서 ‘헬조선’이나 ‘금수저’, ‘흙수저’라는 용어까지 나왔고 특권층의 부정부패도 만연해졌어요. 특히 최순실 씨가 국정을 농단한 숱한 사례들을 접하면서 국민들은 엄청난 박탈감과 허무함을 느끼게 된 거예요. 청와대가 독단적으로 저지른 것이라 해도 문제가 되는데, 시스템 밖에 있는 누군가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분노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거죠.”

새누리당이 최순실 파문 수습책으로 제시한 ‘거국중립내각’에 대해선 국민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된다면 제도권 정당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등 국민을 대표하는 분들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참여해야 한다”며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기들끼리 협상하는 방식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와글’이 기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국민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구체적으로 국민 참여 캠페인 ‘미래세대 긴급 토론회(가칭)’를 오는 7일 오후 온·오프라인에서 열겠다는 계획이다. 앞서 개발자 조합 ‘빠흐띠’, 씽크탱크 ‘더미래연구소’와 함께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을 성공적으로 론칭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국내 최초의 정치 스타트업 ‘와글’의 멤버들./사진제공=와글국내 최초의 정치 스타트업 ‘와글’의 멤버들./사진제공=와글


이 대표는 “최순실 사태로 긴급하게 준비하긴 했지만 자유롭게 토론을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표방하고 있으며, 의제를 제안하고 토론하며 투표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프로세스 전반을 구축할 것”이라며 “기존에 ‘국회톡톡’은 입법 발의를 위한 플랫폼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번 사이트는 정치 전반의 대대적인 구조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연계 플랫폼의 성격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새로운 정치판을 꿈꾸는 이 대표에게 지난 주말 아이슬란드에서 공동 원내 제2당에 오른 신생정당 해적당이 대한민국 정치에 시사하는 의미를 물었다. 기성정치 반대를 기치로 내건 해적당은 지난 29일(현지시간) 치러진 아이슬란드 조기총선 개표에서 14.5%를 득표해 10석을 얻었으며, 집권 연립정부의 일원인 독립당(21석)에 이어 야당인 좌파녹색당(10석·득표율 15.9%)과 공동 원내 제2당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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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신생 정당을 만들 때 3선 이상 중진들이 대거 포진하고, 차기 대통령 후보군도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면서 “하지만 아이슬란드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최근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생정당들은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은 물론 정치 경험이 전무한 전업 주부나 대학강사 등이 시민운동을 통해 각성하고, 이후 당 대표까지 맡는 등 전혀 새로운 정치가 펼쳐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생 정당의 선거 운동 방식이나 주요 정책들이 기성 정당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질 수 있지는 않을까. 기자의 우려에 이 대표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실제로 신생 정당이 선거 운동하는 방식이나 구호가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아마추어스럽지만 기성 정당에 지친 시민들은 오히려 정치적 미사여구로 포장되지 않은, 생생한 ‘날 것’의 요구에 더욱 공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운 형태의, 이 시대에 걸맞는 정당이라고 하는 것도 우리가 알아왔던, 혹은 배웠던 정치와는 다른 문법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먼저 깨우치고 실천하고 있는 셈이죠. 과거에 우리가 생각했던 조직, 인물, 계파 같은 게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시민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정당이라면 흔쾌히 지지를 보내겠다는 겁니다.”

와글이 최근 선보인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 홈페이지와글이 최근 선보인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 홈페이지


지금처럼 전국민이 엄청난 분노와 상실감을 느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는 국민의 직접 참여를 통해 국민의 목소리가 드러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만들고, 새로운 판을 짜는 게 필요하다는 게 이 대표의 생각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진보든, 보수든 대의제에서 정치를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목표는 똑같아요. 바로 ‘재선’이죠. 직업 정치인들은 권력을 유지하는 게 지상 최대 목표입니다. 자신이 재집권하기에 적합한 파트너의 목소리에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 없는 대다수 국민의 목소리에는 둔감하기 마련이지요. 최순실 사태도 따지고 보면 국민은 도외시한 채 그들만의 정치, 그들만의 잔치를 했기 때문에 벌어진 국가적 비극이 아닐까요. 우리는 어쩌면 우리 앞에 닥친 엄청난 위기를 기회 삼아 과거의 병폐를 과감하게 개혁하는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국민의 직접 참여를 통한 방향 설정이 필수적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 참여 정치 실험은 더욱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이 대표는 확신하고 있다. 최순실 사태로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실천하고자 하는 정치권의 노력도 동반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한 가운데서 와글 역시 다양한 정치 실험을 통해 국민 속으로 정치를 담는 데 일조한다는 각오다.

“내년 대선 정국에서는 국민의 목소리에 어떤 식으로 반응하고, 이를 얼마나 진실되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리더의 자격을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그 동안 정치권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대통령 후보에 대한 자격 검증 자체가 투표권 행사의 중요한 키(key)가 될 거니까요. 특히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팩트 체크는 물론 여론 조성, 의견 개진 등 다양한 형태로 온라인 정치 참여가 가능해진 만큼 ‘시민 정치’는 이번 대선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로 부상할 겁니다.”

정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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