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LG화학과 LG생명과학이 합병안을 발표하자 LG생명과학(옛 LG화학) 출신 올드보이(OB)들이 가입된 온라인 커뮤니티는 시끌시끌했다. 누군가는 “다시 합병하려면 2002년 왜 LG생명과학을 분사했느냐”고 서운해한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친정이 이제라도 방향을 잘 잡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격려했다. 소회는 서로 달랐지만 ‘친정’의 성공을 바라는 마음은 같았다는 것이 LG생명과학 출신 바이오벤처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번 합병 맞물려 과거 ‘바이오 사관학교’로 불렸던 LG생명과학 출신 벤처 경영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LG생과 독립 이후 그룹 차원의 지원이 대폭 줄자 실망감에 줄줄이 회사를 떠났지만 지금은 국내 바이오벤처 산업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2일 기준 LG생명과학 출신들이 만든 바이오 벤처인 크리스탈지노믹스(5,000억원), 레고켐바이오(3,000억원), 펩트론(2,500억원) 등 3개사의 시가총액만 LG생명과학의 1조여원을 넘어선다. LG생과 출신들이 약진하는 배경이 무엇일까.
LG생과에서 16년간 연구소장을 맡으며 업계 ‘대부’로 통하는 조중명 크리스탈지노믹스 대표는 과거 LG그룹 차원의 일관성 있는 투자를 첫손에 꼽는다. 조 대표는 “1980년대만 해도 바이오 개념 자체가 낯설었는데도 LG화학은 대전에 연구소를 지어 관련 연구를 총괄했다”며 “박사급 인력 2명을 시작으로 2000년께는 박사 70명과 연구원 250명이 일하는 인프라가 갖춰져 인재가 풍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회사 대표도 연구 방향에 간섭하지 않고 연간 예산도 최대 500억원 수준이라 신나게 일했다”며 “정보기술(IT) 업계의 사관학교가 삼성이라면 바이오 업계의 사관학교는 LG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LG생과 연구원 출신의 이정규 브릿바이오 대표도 “당시는 신약개발 관련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줬다”며 “20년가량 곁눈질하지 않고 쌓은 신약개발 노하우들이 벤처에서도 빛을 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1997년 영국 스미스클라인비첨(현 글락소스미스클라인)에 항생제 기술을 수출하며 글로벌 제약사의 신약 개발 및 마케팅 노하우를 습득한 것이 상당한 도움이 됐다. 경영기획팀장 출신인 박세진 레고바이오켐 부사장은 “스미스클라인비첨이 기술수출과 관련해 한번에 100가지가 넘는 데이터를 요청했는데 이 같은 많은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려다 보니 내부 역량도 자연스레 높아졌다”며 “당시 한국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바이오 연구를 한 곳은 LG생과가 유일했다”고 밝혔다.
반면 30년 가까이 신약개발 등에 투자한 CJ(옛 제일제당) 출신들은 유원일 아이진 대표, 김수옥 진매트릭스 대표, 최영호 엑세스바이오 대표 등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지 않아 대조를 이룬다. 대기업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바이오벤처 업계에서의 입지는 큰 차이가 나는 모습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CJ 같은 경우는 신약·백신·원료의약품 등 사업 방향을 비교적 자주 바꾸는 바람에 내부 역량을 쌓기 힘들었던 구조”라며 “반면 LG생과 출신들은 창업이나 기업공개 등에 대해 서로 노하우를 공유하며 챙겨주는 분위기가 있는 데다 LG 출신이라는 프라이드가 강해 더욱 눈에 띄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