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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이정현, 통렬한 반성문부터 써라

김홍길 정치부 차장

김홍길 정치부 차장김홍길 정치부 차장




집권 여당의 이정현 대표가 사면초가에 몰렸다. 비주류 의원들은 물론 여당 내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사퇴 압박을 가하고 있어서다. 당내 변변한 조직도 없이 거침없는 연설과 파격 행보로 친박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극적으로 대표에 오른 지 석 달 만이다.

사실 이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특수관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2004년 박 대통령과 처음 인연을 맺기 시작한 후부터 박근혜 어록을 전부 모아 ‘혼자 보기 아깝다’며 책을 낸 것이 이 대표다. 그만큼 이 대표의 발언은 박 대통령의 그것과도 같이 인식될 정도였다. 복심 중의 복심이라는 평가가 그렇게 나왔다.


그가 당 대표가 되고 난 후의 발언만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지난 8·9전당대회에서 당 대표 선출 직후 “모두가 근본도 없는 놈이라고 등 뒤에서 저를 비웃을 때 저 같은 사람을 발탁해 준 박 대통령께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표 당선 소감으로는 부적절했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이 대표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는 하나의 사례가 됐다. “당 대표가 국민이 아닌 보스(대통령)만 바라보고 있다”는 당내 비판이 나왔지만 이 대표는 아랑곳 않고 점퍼 차림으로 전국 곳곳의 민생 현장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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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의혹을 받아 온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를 놓고도 이 대표는 사석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대통령과 사사건건 각을 세우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언론이 (대립각을 세우는) 그런 상황을 원하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의 인기가 떨어진다고 해 당이 대통령을 공격하는 그런 ‘구태정치’는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자신을 지금까지 끌어준 대통령이기에 이 대표 스스로도 ‘배신’은 용납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이 대표의 사퇴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당 주류인 친박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고 박 대통령의 실패를 인정하는 꼴이다. 지난 4년간 주류였던 친박이 ‘폐족’이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 위기에 처할 수 있어 이 대표로서도 행동을 가볍게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치적 근본도 없는’ 민간인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정국 현안에 자문을 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상황이다. 최씨 본인은 물론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도 잇따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이 대표가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와는 다른 차원이다. 이 대표가 소중히 모아온 대통령 어록이 사실은 ‘최순실 어록’이라는 정황도 확인되고 있지 않나.

이 대표는 2일 “부족한 당 대표를 도와달라”며 사퇴 거부 의사를 거듭 밝혔지만 이 대표가 물러나고 안 물러나고는 시간문제일 뿐이다. 다만 국민들은 대통령의 복심 중의 복심이던 이 대표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됐는지 통렬한 자기 반성문부터 쓰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이다.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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