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국민을 속인 대통령…이란 콘트라 사건





법을 어기고 국민을 속인 대통령, 의회의 견제와 심의를 받지 않는 제멋대로의 권력 기관. 우리나라의 얘기가 아니다. 30년 전 미국에서 발생한 이란-콘트라 스캔들(Iran-Contra Scandal)의 개요다. 이란 콘트라 사건이란 미국이 ‘테러국가 이란’에 몰래 판매한 무기 수출대금을 니카라과 반정부군에 지원한 사건. 레이건과 그 참모들은 미국 국내법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일을 벌였다. 무기는 물론 마약 거래와 양민 학살까지 연관된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집권 후반기 레이건 대통령을 괴롭혔다.


스캔들이 처음 활자화한 시기는 1986년11월3일. 미국과 이란, 니카라과를 잇는 국제 무기거래의 흑막을 파헤친 레바논 알 시라(Al Shiraa)지의 특종보도를 통해서다. 레바논 주간지의 보도는 전체 거래에서 극히 일부분(니카라과 반군에 대한 총기류 제공)이었지만 미국은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했을 가능성 때문이다. 니카라과 반군에 대한 지원은 남미 반정부군에 대한 지원 금지법(블랜드 수정법) 위반이었다. 보다 심각한 대목은 이란과의 거래. 법도 법이지만 ‘테러국가와는 대화하지 않는다’는 미국 외교의 대원칙이 흔들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국 행정부는 부인과 침묵으로 일관하다 ‘알 시라지의 보도는 사실’이라는 이란 당국의 발표가 나오자 변명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란으로 무기가 수출됐다는 사실을 부인하던 레이건 대통령은 결국 무기 수출을 인정하면서도 인질 교환의 대가라는 점만큼은 부인했다. ‘이란으로 토우 미사일 몇 대가 넘어갔을 뿐’이라고도 덧붙였다. 모두 거짓말이었다. 레이건 행정부의 조직적인 사건 은폐 속에서도 특별 검사가 끈질지게 파고든 끝에 무기 거래의 규모가 일부나마 드러났다.

레이건 행정부는 레바논의 과격 회교 테러범에게 잡혀 있는 미국인 인질 석방에 이란이 협조한다는 조건으로 토우 대전차 미사일 2,712기와 호크 지대공 미사일 258기 및 부품을 넘겼다. 심지어 F-14 전투기 부품 일부까지 제공했다는 설까지 나왔다. 미국은 애초 이스라엘이 보유한 토우 미사일 등을 이란에 넘겨주고 이스라엘의 부족분을 신형 무기로 채워주는 방식을 택하다 2차 거래부터는 직접 대 이란 수출에 나섰다.


대 이란 무기 수출의 이익금은 니카라과 반군 지원에 들어갔다. 반미 성향의 산디니스타 정부를 전복하는 자금으로 활용한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지원한 반란군, 즉 콘트라 군대가 니카라과 국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한 세력이었다는 점. 45년간 독재를 휘두른 소모사 정권의 친위대 잔존세력은 국내에서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국경 지대로 숨어들어 양민을 학살하고 마약 밀매까지 손댔다. 콘트라 반군이 전세 낸 여객기가 마약을 미국에 내려놓고 무기를 적재한 채 떠난 적도 많았다. 모든 것을 미 중앙정보국(CIA)이 조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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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대통령은 “니카라과 반군에 대한 지원은 온건파와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으나 이 역시 거짓이었다. 미국의 좌파 역사학자인 하워드 진(1922~2010)은 ‘오만한 제국’에 ‘사건의 내용이 알려질수록 미국 정부는 더 많은 거짓말로 국민을 속였다’며 ‘재판이나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피상적인 내용만 알려졌을 뿐 문제의 핵심에는 다가서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하워드 진이 간파한 핵심은 미국이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테러 행위를 아무렇게나 자행하는 데 정작 미국 국민들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점이다.

작전을 승인하고도 ‘나는 몰랐다’고 거짓말을 연발한 레이건 대통령은 한때 탄핵위기까지 몰렸다. 최준영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의 연구논문 ‘스캔들, 경제적 성과, 그리고 대통령 지지율: 미국의 경우’(한국정당학회보, 2014년)에 따르면 1986년 10월 63%였던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이란 콘트라 사건이 알려진 직후엔 47%로 떨어졌다.(인터넷 사전 위키피디아 영문판에는 레이건의 지지율이 같은 기간 중 67%에서 46%로 떨어진 것으로 나온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 지지율이 단기간에 이토록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라는 설명과 함께.)

레이건 대통령은 얼마 안 지나 위기에서 벗어났다. 두 가지 덕분이다. 첫째, 경제가 좋았다. 최준영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물가 오름세가 과거 어떤 대통령 시기보다 낮았으며 실업률도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레이건이 지불 해야 할 벌점이 경제적 성과로 상쇄된 셈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심복들이 묵비권을 행사하며 죄를 뒤집어썼기 때문. 레이건은 탄핵의 목전에서 살아났으나 체면은 구겼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았던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미국인도 많다.

레이건 시절 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는 대통령에 오른 뒤, 관련자 모두를 사면해 ‘스스로 이란 콘트라 사건에 관련됐다는 점을 시인한 꼴’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모두가 살아난 가운데 미국 법원은 명판결을 남겼다. 국가안보 행위여서 관련자들은 무죄라는 레이건 대통령 측의 주장을 재판부는 ‘통치행위라도 법을 위반해서는 안 된다’고 간단한 논리로 묵살해 미국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다.

30년 전 초대형 스캔들에도 레이건 대통령은 지지율을 회복하며 살아나 ‘테프론 대통령(Teflon President)’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먼지와 오물이 잘 묻지 않는 미끄러운 물질’인 테프론처럼 어떤 오판과 실책에도 비판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실은 레이건을 테프론 대통령’이라고 부른 비아냥은 1983년에 처음 나온 것이지만 이란 콘트라 사건 이후 더욱 퍼졌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의 ‘교양영어사전’에도 이 단어가 나온다. 요즘에는 ‘테프론 리더’가 보통명사화해 스캔들이나 실수, 실책에도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는 정치지도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고. 한국 상황에 딱 들어맞는 단어라고 여겼는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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