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장사 지정감사제 강화 - 반대

노준화 충남대 경영학부 교수·공인회계사

재무제표 의도적 왜곡땐 무용지물

분식회계를 막기 위해 지정감사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재 피감 기업이 외부감사인을 직접 선임하는 자유수임제 체제이지만 신규 상장 기업이나 부실기업에 한해 당국이 일정 기간 외부감사인을 지정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부실감사 사태 이후 이 같은 폐해를 예방하기 위해 전면적인 지정감사제나 자유수임과 지정감사를 번갈아 받는 순환 지정감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찬성 측은 지정감사제 강화가 현재 기업이 입맛대로 감사인을 선임하는 구조를 깨 감사인과 기업의 유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 측은 감사인 지정을 강화하더라도 경영진의 재무제표 왜곡을 적발하는 데 한계가 있고 국제감사기준에도 어긋나 외국인투자가들의 신뢰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감사인 지정은 감사위원회나 감사를 신뢰할 수 없으니 그들의 권한을 박탈하고 정부가 대신 감사인을 지정함으로써 이해관계자들을 보호하겠다는 논리다.


정부나 정부의 대리기관이 감사인을 지정한다는 것은 회사에 가장 적합한 감사인을 알 수 있다는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는 일정 방식으로 감사인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점수에 맞게 순서대로 회계법인을 지정한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줄 서서 회사를 배정받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태가 터진 후 외부감사인으로 삼일회계법인이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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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떤 감사인이 지정돼도 경영진이 재무제표를 왜곡해 제출하는 경우 감사인이 발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회계부정의 근본적 원인이 경영진이 투자자를 농락하기 위해 재무제표를 왜곡하는 데 있다면 어떤 회계법인도 이를 솎아내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 지정감사인만 책임이 있는가. 감사인을 선임해준 증권선물위원회는 책임이 없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지정감사인의 경우 선임권자가 증권선물위원회이니 선진국의 논리대로라면 증권선물위원회와 감사인이 감사의 전반적 과정에서 서로 소통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임무를 소홀히 한 자가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감사인 선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하고 감사인과의 소통은 부실한 감사위원회가 담당하는 구조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감사인 지정은 회계감사기준에도 어긋난다. 그리고 글로벌 규범인 국제감사기준도 자유수임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투자가가 선진국의 감사제도를 연상하고 한국에 투자했는데 지정감사인으로부터 감사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위의 논리로 감사인 지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이제까지 회계부정은 감사인이 감사를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지배기구와 감사위원회와 같은 회사의 감독시스템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재무제표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감사인에게 찾아보라고 하면 현재까지 개발된 어떤 감사기법으로도 발견하기 어렵다. 국제감사기준도 경영진이 책임지고 회계기준에 맞는 재무제표를 작성할 것을 감사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감사의 전제조건이 깨져 회계감사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부실감사라고 감사인을 비난한다. 원인이 감사인에게 있지 않은데도 감사인을 지정하거나 감사인을 지나치게 처벌하는 잘못된 처방으로는 분식회계를 막을 수 없다.

국내 회계법인의 경우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회계법인은 빅4에 불과하다. 중대형 회계법인 8개로부터 출발해 합병 등으로 그 개수가 줄어들었지만 빅8에 근접하던 어떤 회계법인도 빈자리를 채우지 못했다. 감사인은 자본시장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한 핵심 요소 중 하나다.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대형 회계법인의 숫자가 줄어들고 새로운 회계법인이 이를 대체하지 못하는 상황을 독과점 현상으로 보고 의회에서 고민하고 새로운 합병을 승인하고 있다.

지금처럼 회계법인의 부실감사에 화가 난다고 회계법인을 걷어차는 것은 자본시장이라는 밥그릇을 깨는 것이다. 물론 잘못한 회계법인이 있다면 일벌백계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전문기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조사할 때 가능하다. 결론이 나기 전에 화난 국민 정서를 달래기 위해 회계법인에 먼저 철퇴를 가하는 순간 깨진 회계법인은 더 이상 자본시장에 신뢰를 주기 어렵고 새로운 자본시장의 정보중개자가 이를 대체하기도 어렵다. 결국 자본시장이라는 밥그릇을 우리 스스로 깨는 것이 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상황이 회계부정 때문에 비상시국이라면 단기적으로는 상장법인에만 국한해 감사인을 제한적으로 지정하고 그동안 시간을 벌어 주식회사의 기본 룰을 지킬 수 있게 체질을 개선하는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재무제표를 왜곡할 경우 감사인만을 처벌하기보다는 선진국과 같이 감사의 전제를 깨뜨린 경영진을 엄벌하고 자격미달의 이사와 감사위원이 있다면 감시·감독의 책임 또한 엄하게 물을 수 있는 법적 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글로벌 규범에 맞게 자유수임제도로 돌아가야 한다. 내면에 담긴 정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외형만 그럴싸하게 답습하는 수정된 제도로는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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