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정말로 비겁할까. 대학 시절 읽었던 일본 잡지의 비아냥이 떠오른다. ‘절대권력자 박정희에게는 충성을 맹세한 부하들이 많았다. 일본 같았다면 따라 죽겠다고 최소한 10명은 할복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박정희 밑에서 호의호식했던 사람들은 박정희를 부인하고 숨기에 바쁘다. 한국인들은 생각보다 더 비열한지도 모르겠다.’
뇌리에서 희미해진 기억이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자꾸 생각난다. 10·26 직후 박정희의 직계 부하들은 새로운 간판을 달고 3공의 흔적을 지우려 애썼다. 전두환 시대도 마찬가지다. 5공 핵심 세력들은 유신 정부를 부패한 정권이라고 몰아붙였다. 부마 항쟁 역시 부패와 경제정책 실패 때문이라고 봤다. 친인척 비리에 시달렸던 전두환 대통령은 ‘박정희처럼 여자 연예인과 놀아나지 않았다’라는 점 하나로 자신이 깨끗하다고 여겼다.
시퍼런 3공 권력 아래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고결한 정신을 받들자’고 외친 직계는 없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잊힌 ‘박정희’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부터 부활의 분위기를 탔다. 결정적으로 외환위기(IMF 사태)를 앞두고 치러진 1997년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여당의 이인제 후보가 ‘박정희 헤어 스타일’로 유세에 나서며 바람이 불었다. 박정희의 업적을 기리는 서적도 쏟아졌다.
이듬해인 1998년 4월에는 그 따님이 정치권에 들어왔다. 대구 달성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한 박근혜 의원은 되살아난 부친의 후광으로 탄탄대로를 걸었다. 좌절도 없지 않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이겨 33년 만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금배지를 단 순간부터 박 의원에게는 사람이 몰렸다. 그러나 쉽게 쓰지 않았다. 집에서 칩거하던 19년 세월 동안의 쓰린 기억 탓이리라. 흔히들 말한다. 작금의 모든 사태는 비선(秘線)에 의존한 박 대통령 탓이라고.
맞다. 더욱이 대통령은 무한책임을 지는 자리 아닌가. 문제는 진짜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또 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에게 목숨 걸고 충성할 것 같았던 부하들의 배신과 외면이 오늘날 박 대통령으로 하여금 비선에 의존하는 습성을 만들었다면 원인 제공자들에게도 책임이 있다. 아부하던 권력이 약해지면 외면하는 비열함, 양아치 세계보다도 못한 비겁함은 일본 언론의 36년 전 조롱이라는 과거형에 머물지 않는다.
고관대작이 뭐 그리 좋은지,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요직에 앉았던 인물들이 자리 준다고 덥석 받았다. 당파가 달라도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또다시 불통의 인사가 시작되는 마당에 감투 준다고 덜컥 받아쓰는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박정희의 비열했던 부하들과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 국민의 눈에는 그 머리 위의 감투가 보도진에 이리저리 떠밀리다 벗겨진 최순실씨의 구두 한 짝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비열한 정치는 과거와 현재를 지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칠 판이다. 참으로 해괴한 소리가 들린다. 검찰이 최순실씨를 심문하면서 녹화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그랬나. 검찰 조사단계에서 스스로 증거 인멸이라니 말이 되나. 정치적 중립의 의무와 공정한 잣대를 상실한 법은 ‘현재와 미래의 비열한 야합’에 다름 아니다.
얽히고설킨 그림자 권력으로 인해 온통 엉망이 돼버린 현실을 타개하는 방안은 없을까. 답을 국가공무원 조직의 건강성 회복에서 찾고 싶다. 민원을 해결하려 애쓰고 우리 상품을 더 팔려고 땀 흘리는 공무원들이 살아 움직인다면 최순실 사태로 인한 어수선함을 능히 극복해나갈 수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 있게 현안을 처리해나갈 때만 위기 극복이 가능하다. 공무원들이 비선의 정치적 숙제에 골몰하기보다 정책 과제를 풀 때 국가가 온전히 보전된다.
박근혜 대통령도 공직사회의 안정을 바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려면 대통령께서 시급하게 할 일이 있다. 비선에게 받은 그릇된 정보로 ‘나쁜 사람들’이라며 쳐낸 공직자들부터 복귀시키시라. 진정 반성한다면 이것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혼란한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진정성을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이기도 하다. 부친처럼 비열한 공직자를 반복 생산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