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글로벌 톱5 꿈' 하루만에 접은 현대상선

'세계 5위권 원양선사로 육성'

정부 계획안 현실성 떨어져

내부적으로 판단…자진 철회

해운 구조조정안 실효성 또 도마에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유일한 국적 원양선사로 남은 현대상선이 글로벌 5위 해운사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하루 만에 접어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의 실효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에는 ‘세계 5위권 초대형 글로벌 원양선사를 육성하겠다’는 방침이 담겼다. 업체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하나 남은 국적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을 지칭한 것으로 업계는 받아들였다. 하지만 현대상선 내부적으로도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계획을 철회한 것으로 보인다.

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지난 2일 오후 ‘글로벌 톱5 항해 출항’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언론에 배포하려다 불과 3시간 만에 돌연 취소했다.

현대상선은 이날 정부 당국이 지난달 말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 대책을 활용해 글로벌 5위권에 진입하겠다는 포부를 밝힐 계획이었지만 최종 결재 라인에서 승인이 나지 않아 당일 자료 배포가 무산됐다. 현대상선 측은 “공개할 자료 내용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됐고 자료 배포를 연기했다”고 해명했다.


대신 현대상선은 이날 오전 ‘대한민국 대표 해운사로 재도약’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냈다. 내용은 대동소이하지만 제목이 ‘글로벌 톱5’에서 ‘대한민국 대표 해운사’로 바뀐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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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이 하루 만에 ‘글로벌 톱5’라는 목표를 접고 국내 1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청산절차를 밟으면서 크게 의미를 두기 어려운 ‘대한민국 대표 해운사’를 중장기 목표로 내건 것은 최근 글로벌 해운업계의 상황을 고려할 때 5위권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프랑스 해운조사 기관인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현대상선의 선복량(선박이 실을 수 있는 적재량)은 45만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로 세계 13위다. 1위인 머스크(317만TEU)는 물론 2위 MSC(280만TEU)와 3위 CMA-CGM(217만TEU)과도 격차가 크다. 5위권에 진입하려면 하팍로이드(148만TEU, 합병 논의 중인 UASC 선복량 포함)를 제쳐야 하는데 현대상선과는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여기에 일본 3대 해운사인 MOL과 NYK·K라인이 컨테이너 부문의 합병을 추진하고 있어 상위권 선사들과의 선복량 격차는 더 벌어지게 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상위권 선사들 간의 합병이 이뤄지면서 10위권 밖에 있는 현대상선의 순위가 어느 정도까지는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겠지만 자력으로 5위권까지 올라가는 건 초대형 인수합병이 있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박펀드 조성 등에 모두 6조5,000억원을 지원해 현대상선을 세계 5위권 해운사로 키운다는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방안이 장밋빛 청사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사에 현대상선 수주물량을 몰아주겠다는 계획도 오히려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또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차라리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시키는 것이 해운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라면서 “정부 지원을 받아 현대상선이 덩치를 키울 수 있을지는 몰라도 엉터리 구조조정으로 한국 해운업의 경쟁력은 회복이 힘들 정도로 훼손됐다”고 말했다.

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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