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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스플릿’ 유지태, 새 판 깔다...이번엔 도박볼링으로 인생 뒤집기

“전 필드 나가서 골프를 치는 것 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더 재미있어요. 관객과 소통하는 장이 좋아요. 연기에 대한 순수한 열정,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저에게 늘 힘을 줘요. 이 작업을 지속해서 해 나갈 수 있었음 좋겠어요.”


2012년부터 독립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와 ‘유지태와 함께 독립영화 보기’를 진행하고 있는 유지태의 영화 사랑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배우가 작업에 녹아들어가 있는 게 좋고, 그게 또 재미있다”고 말하는 유지태. 그가 이번엔 볼링영화 ‘스플릿’(감독 최국희/제작 오퍼스픽쳐스)으로 관객을 만난다. 배우의 감성과 감독의 통찰력을 동시에 지닌 인간 유지태의 또 다른 ‘결’ 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3일 오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가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있다. /사진=지수진 기자/3일 오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가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있다. /사진=지수진 기자


◆ 도박볼링으로 인생 뒤집기를 노리는 이 남자, 유지태

남녀노소가 즐기는 국민 스포츠 ‘볼링’에 ‘도박’을 결합시킨 신선함으로 주목 받고 있는 최국희 감독의 영화 ‘스플릿’에서 유지태는 도박볼링 세계에 뛰어든 한 물 간 볼링스타 ‘철종’으로 열연한다.

영화 속에서 유지태는 개인 코치였던 장희웅 프로의 폼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연습에 임했으며, 그는 긴 팔다리와 넓은 어깨를 이용해 정석에 가까운 완벽한 투구 자세를 선보인다. ‘퍼펙트맨’이라 불린 ‘철종’의 탁월한 볼링 실력과 함께 퍼펙트한 영화 사랑이 궁금해졌다.

철종은 우연히 자폐증상이 있는 통제불능 볼링천재 ‘영훈’을 발견하고 계속 주시하며 따라다니게 된다. 그 과정에서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심한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온 영훈의 힘든 가정사를 알게 된다. 어찌보면 신파적으로 흐릴 수 있는 내용임에도 ‘스플릿’은 이를 전형적으로 풀지 않았다.

3일 오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가진 영화 ‘스플릿’ 인터뷰에서 유지태 역시 “최국희 감독이 현실감 있게 장면 장면을 풀어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장면 하나를 꼽자면, 영훈이 아빠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지만 철종은 선뜻 나서지 않아요. 영훈이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흠모해왔던 걸 알게 되며 또 다른 아버지의 감정으로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감정의 변화를 쌓아가면서 보여주는 그 점이 훨씬 현실감 있게 다가왔어요.”

영화 속에선 도박볼링으로 인생 뒤집기를 노리는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전직 볼링 국가대표에서 가짜석유 판매원, 도박볼링판의 선수로 전락한 ‘철종’(유지태)은 욕설을 내뱉는 까칠한 모습부터 능수능란하게 ‘영훈’(이다윗)과 상대 도박꾼을 상대하기도 한다. 특히 힘을 뺀 유지태의 연기 변신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다. 유지태 역시 ‘철종’을 두고 “냉정하고, 차갑고, 못됐지만 재치 있고 넉살도 있다.”고 했다.

‘스플릿’은 볼링영화이면서 도박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은 도박영화에서 기대하는 특별한 볼거리를 기대하기 마련. 이에 대해 유지태는 “도박영화라기 보다는 두 남자들의 성장기가 주요 내용이라 버디무비 혹은 휴먼무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사진=오퍼스픽쳐스사진=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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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을 잘 깔아주고 예열해주는 선배, 유지태

최국희 감독은 당구를 소재로 한 로버트 로즌 감독의 1961년 영화 ‘허슬러’, 자폐증 환자인 형(더스틴 호프만)과, 거친 성격의 자동차 중개상 동생(톰 크루즈)이 등장하는 버디무디인 베리 레빈슨 감독의 1989년 영화 ‘레인맨’에 영감을 받은 걸로 알려졌다.

유지태는 볼링 영화인 ‘킹핀’(감독 피터 패럴리·바비 패럴리, 1996)의 주역 배우 우디해럴슨의 연기를 참고 했다고 했다. 영화 속에서 오른손을 잃은 前볼링챔피언 역을 맡은 우디해럴슨은 망가지는 캐릭터를 넉살좋게 소화해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온다. 유지태 역시 겉으론 허허실실 거리지만 남모를 아픔을 지닌 철종의 캐릭터를 확고하게 정립해서 보여준다.

“우디해럴슨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이 역할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저도 그러고 싶었죠. 이번 영화에서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었어요. 전문가들은 절제하는 내적인 연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영화마다 접근법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철종 같은 캐릭터는 자유분방하게 접근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과 함께 이 점이 오락영화에 유리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럴까. 그저 인생의 루저 같았던 철종의 심경변화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철종의 변화를 촘촘하게 보여주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철종의 현실과 이상을 생각해보고, 그가 선과 악. 그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지를 관객들이 지켜보게 만들고 싶었어요. 인물의 내면을 쌓아가려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사람이 보여야 영화가 재미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캐릭터 설정보다 중요한 게 배우의 감정이다’고 말하는 그. 이는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 서로가 시너지를 내게 만든다.

사진=오퍼스픽쳐스사진=오퍼스픽쳐스


“편안한 앙상블”을 중요시 여기는 그 답게 동료 선후배들과 술자리도 자주 갖는다고 한다. 상대 배우와 많이 이야기하고, 같이 어우러져야 긴장감이 풀어져 배우 본인들의 색깔이 나올 수 있다는 것.

브로맨스의 양대 축을 책임진 이다윗 역시 유지태에게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내가 흔들리면, 다윗 그 친구가 더 흔들릴 걸 잘 알기 때문에, 앙상블을 잘 만들려고 했어요. 전 판을 잘 깔아야 하는 선배 역할을 잘 해야죠. 그 때 그 때 상황을 잘 캐치하는 건 필수죠. 상대방 배우들이 부담스럽다고 하면 한 걸음 물어나고, 또 어떨 땐 내가 판을 깔아 예열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거기에 맞게 적절한 판단을 하는 건 제 몫이죠.”

영화 속에선 생계형 브로커로 나선 이정현과의 알콩달콩 케미도 돋보인다. 연기력은 물론, 비주얼적인 케미도 인상적이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씩’ 웃는 얼굴이 일품인 유지태는 “정현씨랑 키 차이가 많이 나서 오히려 더 재미있었지 않냐?”고 되묻기도 했다. “오락영화에서 재미있는 설정 아닌가요? 한 사람은 등치가 산처럼 크고, 또 다른 한명은 그와는 반대이고. 게다가 정현씨가 연기를 너무 잘 해줘서 에너지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

/3일 오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가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있다 /사진=지수진 기자/3일 오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가 인터뷰 전 포토타임을 갖고있다 /사진=지수진 기자


◆ 배우의 감성과 감독의 통찰력을 동시에 지닌 인간 유지태의 ‘결’


1998년 영화 ‘바이준’으로 시작해 ‘주유소 습격사건’, ‘봄날은 간다’, ‘거울 속으로’, ‘올드보이’, ‘남자는 여자의 미래다’, ‘가을로’, ‘남극일기’, ‘더 테너 리리코스핀토’ 등에 출연하며 필모그래피를 써내려온 유지태는 최근 드라마 ‘굿 와이프’에 출연하며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이란 별명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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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도엔 잠시 스크린에서 그가 보이지 않기도 했다. 그 시간 유지태는 ‘안까이’란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안까이’는 조선시대 ‘아내’를 이르는 말.

“‘안까이’라는 시나리오를 탈고하기 위해 1년 반 이상의 시간이 걸렸어요. 현재는 투자자를 위해 디벨롭 중입니다. 멜로에 가까운 드라마입니다. 제 출연 여부요? 아직은 어떤 가능성도 열어놓으려고 합니다.”

영화 ‘초대’, ‘마이 라띠마’ 등에서 이미 감독으로 행보를 걸어온 그는 “배우와 감독 그 사이의 밸런스를 잡고 싶다”고 했다.

“감독으로만 일을 하고, 배우를 하지 않았을 때 어느 한 쪽이 무너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 중이죠. 또 감독을 하더라도 제가 배우로서 영향력이 있을 때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그의 감수성, 즉 작가주의를 선호했던 그의 행보는 제작자의 시각과 충돌할 수 있는 면이 있다. 그는 “제가 지닌 감성과 기본 베이스는 그대로 가겠지만, 그 스킬을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흥행만을 따라가는 감독이 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책임감 있는 감독이 되겠다는 의미.

“제가 50억 아니 100억 이상을 투자 받는 감독이 된다면, 그에 맞는 책임감을 느껴야죠. 그에 상응하는 수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게 사실이구요. 제가 작가 겸 감독으로서 어떤 결이 상업적으로 잘 표현된다면, 제작자나 투자자는 물론 저 역시 상처받지 않고 ‘윈윈’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환경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우겸 감독인 유지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는 맷데이먼, 기타노 다케시, 존 카사베츠 감독 등이다. 모두 배우 겸 감독으로 유명한 이들이다.

우리가 배우 겸 감독하면 흔히 떠올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의 롤 모델 목록에 없었다. 애초부터 빅버짓(대형 제작비)할리우드 영화 감독인 그의 행보와는 다른 길을 가고 싶은 것.

“우리는 완벽하게 양분된 영화 시장 속에서 살고 있어요. 100억 위주의 영화들이 주목을 받고, 중저예산 또 초저예산 영화들은 배급할 곳이 없어 사라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뭐가 전체적인 구조가 변화가 되었음 해요. 영화 시장이란 게 작은시장과 빅버짓 시장이 공존하는 시장이 되었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그는 거대 규모 영화에 대한 우려보다는 감독의 결이 느껴지는 영화가 사라져 가는 상황을 아쉬워했다. 흥행의 잣대로만 재단을 해서 감독이 가지고 있는 특이성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을 돌아보게 한 유지태는 “다양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3일 오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가 영화 ‘스플릿’ 인터뷰 전에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지수진 기자/3일 오전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배우 유지태가 영화 ‘스플릿’ 인터뷰 전에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사진=지수진 기자


◆ 유지태를 움직이는 힘...내가 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책임감

틈이 날 때마다 영화와 연극 보는 걸 즐긴다는 유지태. 그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세운 제작사 유무비(有無飛)를 세우기도 했다. 2004년 배우 오달수와 함께 2인극 ‘해일’에 이어 연극 ‘육 분의 륙’, ‘귀신의 집으로 오세요’ 등에 출연 및 제작자로 나서 소극장 관객과 만나기도 했다.

장창원 감독의 영화 ‘꾼’ 영화 촬영으로 바쁜 나날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다시 한번 검사 역할로 돌아온다. ‘굿 와이프’와는 느낌이 다르다고 하니 또 한번 변신할 그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드라마 ‘굿 와이프’랑 느낌을 좀 다르게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악역이긴 하지만 좀 더 폭력적이고, 조금 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입니다. ”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스플릿’에서 철종은 영훈을 만나고 변화하게 된다. 이에 19년차 배우이자, 한 집안의 가장. 한 아이의 아빠인 그를 변화시키는 게 뭘까 궁금해졌다.

“가장을 움직이는 건 책임감이죠. 가장으로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을 해요. 1년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으니까요. 금전적인 것이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배우는 계속 굴러야 하고, 창조해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선 내가 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책임도 분명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저를 움직이는 힘이죠.”

687만 관객을 돌파한 박홍진 감독의 ‘곡성’ 이후 참으로 흥미진진한 영화를 만났다고 말을 건네자, 유지태가 위트있게 받아쳤다. “‘곡성’이 앞으로 고개가 숙여지면서 가슴은 움츠려드는 집중도 높은 영화라면, 우리 ‘스플릿’은 팔을 위로 올리면서 ‘화이팅’을 외치며 보게 되는 영화죠. ”

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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