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 '0.01% : 99.99%의 나라' 美, 트럼프 시대를 열다

■김광기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부자 되려면 부자로 태어나야'

중산층 붕괴되고 양극화 심화

아메리칸 드림 사라져버린 美

금권정치·부패 등 원인 분석

"미국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라"

닮아가는 한국사회에도 경종



정치 아웃사이더가 워싱턴 엘리트를 꺾을 수 있었던 비결은 ‘중산층의 반란’에 있었다.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제45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 문외한에 예측불가·다혈질 재벌인 트럼프는 기득권 경제·정치·언론에 신물이 난 백인 중산층의 분노(앵그리 화이트)에 편승해 백악관 입성에 성공했다. 실제로 이번 대선에서 중산층 노동자가 밀집한 러스트벨트는 트럼프에 표를 던지며 판세를 뒤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러스트벨트는 과거 제조업 기반의 미국 경제의 중심지였지만 세계화의 반작용으로 쇠락했다. 이 지역의 위스콘신과 미시간 등은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이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트럼프 돌풍은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는 믿음에 배신당한 평범한 이들의 좌절감의 방증인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엘리트 권력에 분노한 중산층의 표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사진 AFP=연합도널드 트럼프가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엘리트 권력에 분노한 중산층의 표심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사진 AFP=연합


신간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는 잘 사는 1%와 못 사는 99%를 넘어 0.01%를 위한 나라가 되어버린 미국의 양극화와 중산층 몰락 현상을 분석한다. 2011년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통해 미국 사회에 팽배한 불평등을 지적한 김광기 경북대 교수는 “미국 경제는 위기를 딛고 서서히 호전돼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미국의 현주소를 각종 통계와 사회 현상을 통해 짚어낸다.

‘미국인들이 이렇게 못살았어?’ 미국이란 이름 앞에 붙은 ‘세계 최강국’, ‘자본주의의 첨병’, ‘아메리칸 드림’ 같은 수식어에 익숙하다면 책 서두에 소개된 미국의 현실에 놀랄 수밖에 없다. 사실상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반쯤 빼앗겨버렸다. 미국인의 44%는 가구당 평균 유동자산이 약 180만 원에 불과하고, 54.2%는 연봉이 3,6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다. 경제가 안 좋으니 어쩌겠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경제의 허리’가 이토록 빈민층으로 전락해가는 동안 저 꼭대기 최상층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고액 연봉자 상위 894명은 연봉으로 최하 2,000만 달러, 한화로 240억 원 이상의 소득을 챙기고 있다. 고액 연봉자 900여 명이 벌어들이는 총소득이 전체 임금 근로자 99.999989%의 총소득(370억 900만 달러)보다 더 많다. 저자는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기 위해 써왔던 ‘1:99’라는 표현을 이제는 ‘0.01:99.99’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생각은 망상이며, 이제 미국에서 부자 중의 부자가 되려면 부자로 태어나는 길밖에 없다’(79쪽)는 경제학자 이매뉴얼 사에즈와 가브리엘 주크먼의 말처럼 빈민·중산층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다리 자체가 사라져버린 셈이다.

2011년 10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금융가 월스트리스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우리는 99%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미국을 경제위기에 빠뜨려놓고 수백만 달러의 퇴직금을 챙겨 떠나는 월가 최고경영자들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한 사건으로, 저자는 ‘부의 불균형을 표현하는 1:99는 이제 0.01:99.99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2011년 10월 미국 뉴욕 맨해튼의 금융가 월스트리스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우리는 99%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미국을 경제위기에 빠뜨려놓고 수백만 달러의 퇴직금을 챙겨 떠나는 월가 최고경영자들에게 분노한 사람들이 분노를 표출한 사건으로, 저자는 ‘부의 불균형을 표현하는 1:99는 이제 0.01:99.99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0.01%의 부자는 어떻게 중산층에게서 부를 빼앗고 가난을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으로 ‘기업과 로비스트에 휘둘리는 정치권’을 꼽는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정치권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을 겨냥한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오바마는 월가와 손잡고 엄청난 액수의 정치자금을 받아 챙긴 금권 정치의 핵심이다. 예컨대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개혁법안인 도드-프랭크 법의 파생 상품 거래 금지 조항 폐지를 위해 월가의 대형 금융사가 정치권에 살포한 로비자금은 2014년 한 해 동안 약 12억 달러였는데, 이 로비 대상자 중엔 오바마도 포함돼 있었다고. 책은 오바마를 자신과 사진 촬영하는 데만 1만달러, 저녁 식사가 포함되면 2만달러인 정치자금 모금 행사에 자주 출몰하는 인물로도 묘사한다. 그러면서 그의 핵심 정책으로 꼽히는 건강보험 개혁도 진정한 목적은 국민 건강 증진이 아니라 간접세 징수에 있다고 비판한다. 백악관을 떠날 때 무일푼이었던 클린턴 부부가 지금은 3,000억원대의 막대한 부를 축적한 배경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한다.


남의 나라 이야기에서 작금의 대한민국이 겹쳐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0.01%를 위한 나라’, ‘중산층 이하의 99.99% 국민을 가난으로 내모는 나라’라는 표현은 2016년 대한민국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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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미국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라’고 충고한다. 경제 살리기의 주요 수단으로 한껏 미화된 기업에 대한 탈규제 기조를 바꾸고, 교육이 사회이동 기제로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정상화하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판 대도들을 발본색원해 정경 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내는 일이야말로 우리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중산층 살리기’의 요체라고 강조한다. 1만 6,000원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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