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군의 거짓말과 지도자의 죄악…경기병 여단의 돌격





‘연전연승’과 거짓말. 19세기 영국군과 태평양전쟁기 일본군, 6.25 전쟁기 한국군의 공통점이다. 영국군은 크리미아 전쟁에서 러시아군에게 대패했을 때도 대승을 거두고 있다며 거짓 정보를 흘렸다. 대부분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의 선무공작(宣撫工作)은 한술 더 떴다. 연일 본토가 폭격받으면서도 ‘황군(皇軍)의 연전연승으로 귀축(鬼畜), 영미(英米)는 머지않아 이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다’고 떠벌렸다.


6.25전쟁 초기 한국군의 거짓말은 수많은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적을 격퇴하고 있다던 국군은 한강 다리를 끊었다.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다던 이승만 대통령을 믿었던 서울시민들은 인공 치하를 겪었다. 수도를 탈환한 국군은 대통령과 국군의 방송을 믿고 서울을 지켰던 시민들을 ‘서울에서 철수하지 않은 부역자’로 몰아세웠다.

영국에서는 이런 일이 19세 중반 이후 없어졌다. 신문의 힘이 컸다. 영국 최대 일간지인 더 타임스와 종군기자 윌리엄 러셀(William H Russell)이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러셀 기자는 불편한 진실을 감추려는 영국군 지휘부의 저지를 뚫고 사실을 보도해 영국 사회에 충격을 던졌다. 흑해 연안 세바스토폴 인근에서 발생한 발라클라바 전투(1854년10월25일)에서 영국군 일부 부대가 무모한 돌격으로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는 1854년11월14일자 더 타임스 기사는 논란부터 낳았다.

군은 입을 다물고, 영국에서는 ‘신문의 보도보다 장병의 사기와 국익이 중요하다’는 반론이 일었다. 전투의 패배를 받아들이면서도 국민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문학 작품도 연이어 나왔다. 영국의 계관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이렇게 읊었다.

누군가 큰 실수를 저질러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가면서도

전속으로 내달린 경기병 여단!

잘못된 명령인 줄 알면서도

대꾸하지도 이유를 묻지도 않고


죽음을 향해 돌격한 600명의 경기병 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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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전해지는 테이슨의 육성 낭독으로 들으면 전투 분위기까지 느낄 수 있는 ‘경기병 여단의 돌격(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 가운데 일부다. 영국 시인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운율을 구사했다고 평가받는 테니슨이지만 훗날 남작 작위까지 받는 데는 애국심에 호소한 이 시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정글 북’의 작가로 유명한 러디어드 키플링도 1891년 비슷한 시(The Last of the Light Brigade·최후의 경기병 여단)를 지었다.

당대를 풍미한 시인들이 소재로 삼았던 경기병 여단의 돌격의 실제 상황은 어떠했을까. 670여명의 영국군 혼성 경기병 여단이 23배가 넘는 러시아군을 향해 돌진을 감행해 10분 만에 345명의 인명 손실을 입었다. 말도 안되는 패배의 원인은 야전 지휘관들의 무능과 명령 체계 혼선이 겹쳤던 까닭이다. 총사령관과 야전 지휘관의 의사 소통이 불통인데다 처남·매부 사이였던 현장 지휘관들은 근친 증오로 으르렁거리며 말도 섞지 않았다.

언론사가 자비로 전장에 내보낸 최초의 근대적 종군기자로 손꼽히는 윌리엄 러셀 기자는 잇따라 혼선과 참패의 원인을 정확하게 보도함으로써 분위기를 돌렸다. 당장 토리당의 애버딘 내각이 무너졌다. 귀족가문의 자제들이 군의 요직을 차지하던 영국 군대에서 장교를 능력 위주로 선발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장교 계급을 돈으로 사던 매관매직도 사라졌다. 영국은 명령에 복종해 죽어간 장병들을 기리면서도 내부를 개혁하는 데 러셀 기자의 특종을 십분 활용했던 셈이다. 허례허식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실용주의가 대신 들어섰다.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다져진 사회를 고도화할 수 있었다.

발라클라바 전투가 벌어진 크리미아 전쟁은 또 한 명의 민간인 영웅을 낳았다. 귀족 가문 규수였던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러셀 기자가 송고하는 크리미아 전쟁 소식을 읽고 간호부대를 이끌며 수많은 장병들의 목숨을 구해내 ‘백의의 천사’라는 찬사를 받았다. 90세 천수를 누린 나이팅게일은 정작 생애의 단 2년 동안만 간호사로 지냈다. 나이팅게일은 영국군의 병영과 야전병원의 수준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리고 개선하는 데 생애를 바쳤다. 통계학계에서는 나이팅게일이 독특한 그래프에 담은 통계를 제시해 영국 육군의 군수지원 및 의료체계를 개혁했다는 점에서 현대 통계학의 개척자로도 간주한다.

최초의 본격 종군기자 러셀의 특종으로부터 162년이 지난 오늘날의 세계는 과거보다 나을까. 걸프전쟁부터 임베드 프로그램(embed program)을 적용하며 기자들의 자유취재를 봉쇄한 미국은 비판보도가 적어졌다고 웃었지만 전쟁비용은 더욱 많아지고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불편한 진실’을 막으려는 시도는 발전을 저해한다.

베테랑 종군기자 출신인 에릭 두르슈미트는 ‘아집과 실패의 전쟁사’에서 발라클라바 전투의 교훈을 이렇게 정리한다. “혼자 떠드는 것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착각한 상급자들 때문에 역사는 때때로 고통스러운 굴곡을 그린다. 영국 경기병대의 어이없는 자살공격은 커뮤니케이션이 능력이라기보다는 의무라는 점을 말해준다. 의사 소통에 대한 지도자의 게으름은 죄악이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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