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측이 내년 정부 출범과 함께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한데다 주요 교역 상대인 EU까지 중국 철강제품에 폭탄관세를 부과하며 공세를 강화하자 중국에서는 무역수지와 급격한 성장률 둔화를 배제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EU에 즉각 우려를 표명했고 관영 환구시보는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중국의 고강도 경제보복을 초래할 것이라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에 중국을 둘러싼 무역분쟁의 암운이 짙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신랑망 등 중국 매체들은 “지난 13일(현지시간) EU가 중국산 강관에 43.5∼81.1%의 관세를 적용했다”면서 “바깥지름이 406.4㎜(16인치)를 초과하는 제품을 대상으로 초고율 관세가 6개월간 적용되며 5년간 연장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EU는 관세부과 이유에 대해 “중국의 덤핑 수입품 때문에 유럽 철강회사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EU는 지난달에도 중국산 열연강판 등 2종의 제품에 최고 73.7%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하는 등 중국을 겨냥한 고강도 통상 압박조치를 이어나가고 있다. 바깥지름 406.4㎜ 이하 강관에는 이미 반덤핑관세를 매긴 상태다.
중국 상무부는 “EU의 철강 관련 보호무역 경향에 큰 우려를 표명한다”며 “유럽 철강산업의 문제는 경제성장이 부진하기 때문이지 중국 철강제품과의 경쟁 때문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미국도 올 5월 중국산 냉연강판에 522%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고 중국 주요 철강사를 상대로 가격담합 조사에 착수했다. 미 상무부는 이와 함께 이달 초 중국이 관세율이 낮은 멕시코나 베트남 등을 거쳐 미국에 알루미늄 등 철강제품을 우회 수출하는 데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 대선 직후 비교적 신중 모드를 유지하며 미국과의 관계회복을 조심스럽게 기대했던 중국은 미국 정치권에서 대중 통상 압박과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본격적으로 거론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맞불 공세를 펼 기미다.
환구시보는 이날 사설에서 “트럼프가 중국을 환율조작국 명단에 올리고 중국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물린다면 중국은 바로 반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환구시보는 구체적인 보복수단으로 “중국은 보잉사에 주문한 여객기를 프랑스 에어버스로 바꿀 것”이라면서 “미국산 자동차와 애플 아이폰의 중국 판매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어 “미국산 콩과 옥수수 수입도 중지될 것”이라며 미국 내 중국인 유학생 수를 제한하는 전방위 압박을 거론했다.
중국이 이처럼 관영언론까지 동원해 강력하게 반발하는 데는 트럼프 당선과 함께 전 세계에 중국을 타깃으로 한 통상 압박 움직임이 확대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중화권 언론과 금융권은 자국산업 보호정책과 자국 석유산업 지원 등 트럼프노믹스로 중국은 수출과 해외 인수합병(M&A) 확대 노력이 난관에 부딪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판밍타이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현재 미국의 경제정책은 불확실성이 큰 만큼 당분간 중국 투자자들과 기업들은 미국의 정책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다만 경제관찰보 등 일부 언론들은 트럼트가 당선 후 극단적 무역보호주의를 수정할 것이라는 기대도 내놓았다. 실제로 1992년 빌 클린턴은 대선 후보 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에 반대했지만 당선 이후 이 협정을 통과시킨 사례가 있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승리로 미국이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고율 관세를 매긴다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일원으로 미국에서 들여오는 모든 제품에 대해 보복을 할 수 있다”면서 “이는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에 돌입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