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촛불, 눈물,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100만 촛불이 절망·분노 뿐이랴

새시대 향한 염원도 밝게 빛났다

대통령, 민심 무겁게 받아들이길





지난주 말 한시라도 TV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두 눈은 모니터와 하나가 됐다. 비록 광화문광장에 가지는 못했지만 마음만은 촛불을 든 100만 국민들과 함께였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처음에는 100만명이나 올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인파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어둠이 깔리면서 희망을 밝힌 ‘촛불의 바다’와 모두가 하나 된 ‘촛불 파도’ 장면에서는 전율이 느껴졌다. 특히 100만명이 모였는데도 흐트러짐 없이 질서 정연하게 집회를 즐기는 모습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고 뿌듯했다. 집회가 끝나갈 무렵 일부 시민들이 내자동 어귀에서 경찰들과 팽팽하게 대치할 때는 혹시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마음속으로 제발 끝까지 평화적으로 끝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랐다. 아무런 사고 없이 촛불 축제가 끝났을 때는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집회 내내 어린아이를 목마에 태운 아빠, 손을 마주 잡고 촛불을 든 연인들, 교복을 입고 나온 학생들,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뜨거운 함성에 몇 번이나 울컥했고 변화를 열망하는 간절한 촛불 행진에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까지 했다.

어디 이 눈물이 나 혼자뿐이랴. 많은 국민들이 그간 가슴에 쌓였던 응어리를 꾹꾹 눌러오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촛불로, 횃불로, 광장의 들불로 번진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자행됐던 민심을 배반한 숱한 과오와 그로 인해 억장이 무너진 민초들의 피눈물이 모여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러갔을 게 자명하다.


저 깊은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은 세월호와 아스라이 사라져간 수백 명의 꽃다운 청춘들, 이들의 손을 여전히 놓지 못해 목놓아 통곡하는 가족들의 눈물을 박근혜 정부는 외면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통보한 개성공단 폐쇄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앉게 된 업체들의 절망은 또 어떤가. 개성공단 폐쇄로 막대한 피해를 본 한 중견기업의 대표는 “개성공단 입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냐”면서 “지금도 개성공단이라는 말만 나와도 몸서리를 친다”고 울분을 토한다. 일본과의 위안부 협상을 박근혜 정부의 10대 치적이라며 책자까지 만들어 자화자찬한 것은 후안무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이제 40여명에 불과한 위안부 피해자 생존자 할머니들이 “대통령이 우리 역사를 그렇게 팔아먹을 줄 몰랐다”며 눈물로써 호소했지만 현 정권은 할머니들의 아픔과 상처를 더 후벼 팠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검정 역사교과서를 눈 하나 깜빡 않고 밀어붙였던 뻔뻔한 행태와 수천 명의 희생자와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했던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도 ‘눈물의 바다’는 어김없이 반복됐다. 결국 켜켜이 모인 눈물바다가 광장에 모여 울분과 분노의 쓰나미로 박근혜 정부를 심판하게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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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00만 촛불의 외침에는 분노만, 절망만, 눈물만 담긴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후손들에게 더 나은 대한민국을 물려주고 싶은 희망과 미래를 담았다는 점에서 이번 촛불의 의미는 남다르다. 바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는 것, 우리 모두가 활활 타오르는 촛불을 들었던 이유다. 대통령의 퇴진, 하야를 넘어 이참에 대한민국의 적폐를 갈아엎을 총체적인 국가 개조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정치 개혁과 사회 개혁의 대전환을 모색해 정의와 민주주의가 살아 숨 쉬는 국가 개혁을 일궈 희망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깊고 뜨거운 촛불의 울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 역사의 순간에 마주했다. 지난주 말 방영된 무한도전에서 한국사 강사 설민석씨는 영국 역사학자 E H 카의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끝없는 대화’라는 말을 인용하며 “난관을 헤쳐나갈 해답이 역사에 있다”고 말했다. 예로부터 민심을 이기는 통치자가 없고 통치자는 국민만 보고 가야 한다는 일침이다. 수능을 앞두고 “공부도 꿈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나라에서 공부해봤자 뭐하냐”고 현실에 절망해 집회에 참석했다는 고3 수험생의 외침을 박 대통령이 민심의 울림으로 무겁게, 올바르게 받아들이기를 간곡히 바란다.

홍준석 생활산업부장 jshong@sedaily.com

홍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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