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잘나가던 동남권 경제, 한국판 '러스트벨트'로 추락하나

■ 3분기 지역 경제 동향

부산·울산·경남 등 광공업 생산 5~9% 뚝

취업자도 0.4% 증가 그쳐 광역권 중 꼴찌

물가 상승 속 인구마저 8,300여명 순유출

'외바퀴' 건설수주도 44% 줄어 앞날 불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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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선·해운의 호황과 함께 우리 경제를 이끌었던 부산·울산·경남 등 동남권이 한국의 ‘러스트벨트(rust belt)’가 되고 있다. 러스트벨트란 ‘녹슬다(rust)’라는 뜻과 같이 경제가 번영했지만 추락한 지역이다. 미국을 세계 최대 경제대국으로 이끌던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자동차산업),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주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동남권 경제벨트도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며 생산·소비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졌고 인구 ‘엑소더스(대탈출)’ 현상까지 나타나는 등 비슷한 길에 접어들고 있다.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3·4분기 지역 경제 동향’에 따르면 동남권 광공업 생산은 6% 줄어(전년 대비) 5대 광역권(수도권·충청권·호남권·대경권) 중 가장 나빴다. 지난 2009년 1·4분기(-9.9%) 이후 가장 큰 감소율이다. 부산이 8.9% 급감해 6년 3개월 만에 최저였다. 현대중공업이 위치해 조선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고 현대자동차 파업까지 겹친 울산은 5.8% 줄어 2009년 1·4분기(-10.9%) 이후 7년 반 만에 가장 낮았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이 있는 경남 역시 -5.1%로 1년 9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갔다.

고용시장도 얼어붙었다. 동남권 취업자 증감률은 0.4%로 5대 광역권 중 꼴찌였다. 전국 평균(1.2%)의 3분의1에 불과했다. 생산부진과 실업난에 지갑도 닫혔다. 부산의 소매판매 증감률은 1.5%를 나타내 1년 9개월 만에 최저였다. 울산은 2% 감소해 통계가 있는 2010년 이후 가장 낮았고 경남 역시 -1.1%를 기록해 3년 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설상가상으로 물가도 올랐다. 동남권 물가상승률은 0.8%로 전국 평균(0.8%), 수도권(0.9%)과 비슷했다. 경기는 다른 지역에 비해 죽을 쑤는데 물가는 똑같이 오르는 셈이다. 인구도 순유출됐다. 지난 분기 총 8,331명이 동남권을 떠나 전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등졌다. 수도권으로 3,032명, 충청권에 7,384명이 순유입됐고 대경권서 2,060명, 호남권에서 4,146명이 빠져나갔다.


한국 동남권 경제벨트의 추락은 미국 러스트벨트와 판박이라는 지적이다. 미 러스트벨트는 자동차·철강·타이어 등을 생산하며 1970년대까지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포드·GM·크라이슬러 등 3개 자동차 회사와 US·베들레헴·내셔널 등 3대 철강사, 타이어 기업은 자유무역의 빗장이 열리기 전까지 거대한 미국 내수시장을 독점했다. 노조는 강성으로 변해 갔고 경영진도 “장사 잘되는 데 골치 아픈 일 벌일 필요 없다”며 견제하지 않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학 용어로 전쟁 중 양측이 참호에만 들어가 나오지 않는 ‘인 트렌치(in trench)’ 현상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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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고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출범하면서 전 세계의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이 밀려들자 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했다. 기업은 저임금 지역을 찾아 미국 남동부, 멕시코 등으로 공장을 뜯어갔다.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인구는 이탈했으며 범죄율도 치솟았다. 결국 이번 대선에서 강력한 제조업 유턴 정책을 천명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몰표를 줘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우리 동남권 경제벨트의 조선·해운·자동차산업의 발달은 1960년대 이후 우리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이끌었다. 성 교수는 “하지만 우리도 내수시장에 안주하며 중국산 제품의 추격에 대응하지 못했다”며 “동남권 경제가 미국의 러스트벨트와 비슷하게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기업은 계속해서 해외 생산을 늘리고 있으며 인위적인 구조조정 바람까지 겹친 상태다.

동남권 경제의 앞날도 밝지 않다. 그동안 이 지역 경제를 나 홀로 이끌던 건설 부문이 심상치 않다. 선행 건설경기 지표인 건설수주가 3·4분기 44.1% 급감해 5대 광역권 중 최악이었다. 전국 평균은 3.6% 증가했고 수도권은 30.5%, 대경권은 19.4% 올랐다. 그동안 동남권은 건설 부문만은 두 자릿수 이상 올라 경기를 지탱해왔다. 건설 경기 둔화는 지역 경기 부진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된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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