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인공지능(AI)이 부흥기를 맞고 있지만 과거 신기술들이 그랬듯 거품은 곧 사라질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오더라도 기술 발전만으로 세상이 급변하지는 않습니다.”
대표적인 토종 로봇 개척자 중 한 명인 김병수(48·사진) 로보티즈 대표는 최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열린 ‘2017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전망 컨퍼런스’ 강연에서 예비 창업자와 벤처인들에게 ICT의 신기술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을 주문했다.
그는 “벤처인이 기술 발전에 보수적 시각을 갖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며 “그러나 창업 경험에 비춰볼 때 자생적인 시장 창출을 믿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김 대표는 고려대 공대 졸업 후인 지난 1990년대 후반 각종 세계 로봇 대회를 석권하고 일본 마이크로 마우스 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수상하며 토종 로봇의 신예로 주목받았다. 1999년 동료 5명과 함께 창업해 이듬해 내놓은 스마트토이 ‘디디와 티티’가 소위 대박을 쳤다. 해외에 총 130만대가 팔리고 기술 로열티로 매월 1억원을 받는 초반 성공에 고무돼 직접 로봇 생산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참패. 번 돈을 다 날리고 20억원의 개인 빚도 졌다. “한 달 은행이자만 1,000만원이었을 때에는 좌절과 절망뿐이었습니다. 사업이 성공할 때는 ‘무엇’을 고민하지만 위기가 닥치면 ‘왜’를 자문하게 되지요. 회사 동료직원들과 다시 뛰었습니다.”
로봇이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액추에이터(모듈형 부품)를 선보이고 틈새시장인 교육 로봇 분야를 개척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로봇 프로그램소스를 공개해 해외 유수 로봇 기업들에 인지도도 높였다. 현재 연매출 130억원에 30여종의 로봇, 500여종의 부품을 판매하고 있다.
그는 “액추에이터 성능을 인정해주는 해외 기업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며 “기술이 있어도 하드웨어 판매는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신기술을 채택하는 기업은 시장수요를 고려해 수용할 뿐 기술적으로만 판단하지는 않는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그는 “예컨대 이미 20여년 전부터 범죄 패턴이나 발생요소 등을 분석하는 범죄 예방 AI 프로그램이 개발돼왔는데 보안회사들이 지금 단지 AI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선택하지는 않는다”며 “결국 기술이 아니라 가성비(실속)를 따져 수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 모 기업에서 AI를 적용한 로봇 청소기를 내놓았지만 시장 호응이 없었던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신기술이 소비자의 성향과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적절한 전략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기업의 마케팅과 시장수요 등 기술 외 변수가 함께 작용할 때 비로소 기술로 인해 세상도 변하는 것”이라며 “기술만으로 세상이 쉼 없이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내려놓고 냉철한 시각에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