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스웨인이 연사 에이전시(Speakers Agency)를 ‘즉흥적’ 으로 차렸다고 말하는 건 실제 사실보다 부족한 표현이다(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창업을 했다). 그는 1980년, 치열한 경쟁에 대한 계획과 이해 없이 친구의 사무실 다락방에서 대행사를 시작했다. 그는 몇 개월 간 고전한 끝에, 계약을 위한 느긋한 접근 방식(그는 단지 악수만으로 첫 고객과 거래를 성사시켰다)이 강점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웨인은 베스트셀러 작가, 최고 운동선수, 세 명의 전 미국 대통령들의 대행을 맡았다. 그의 워싱턴 스피커스 뷰로는 현재 150명의 고객을 관리하는 17명의 에이전트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 매출 1억 5,000만달러를 올리고 있다. 스웨인(71)은 최근 ‘지금의 나를 만든 것(What Made Me Who I Am)’이라는 책을 출간해 유명 인사들과 그들의 터닝포인트를 다루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버지니아 주 알링턴 Arlington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약국에서 밤 교대 근무를 했고, 아버지는 내셔널 공항(National Airport)에서 택시 배차원으로 일했다. 나는 고교 시절 훌륭한 육상 감독을 만났고, 그처럼 되고 싶었다. 그래서 조지 워싱턴 대학교로 진학해 교육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학내 감독으로 고용됐고, 1975년 육상 조감독으로 승진했다.
나는 조지 워싱턴대가 5,000석 규모의 찰스 E. 스미스 센터 Charles E. Smith Center를 지을 당시, 마케팅을 위해 광고 회사를 고용한 적이 있었다. 이 때 해리 로즈 주니어 Harry Rhoads Jr.라는 광고회사 중역을 만났다. 그는 어느 날 내게 해리 워커 에이전시 Harry Walker Agency에 관한 포춘 기사를 보내주었다. 내용은 이랬다. 당시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Henry Kissinger가 다른 경쟁업체 대신 왜 워커와 계약을 해야 하는지 질문했다. 워커는 “아예 경쟁업체 자체가 없다”고 대답했다. 해리 (로즈)는 해당 페이지에 ‘경쟁사가 없다?’ 는 메모를 붙여놓았다.
1980년의 일이었다. 아내 폴라 Paula가 거기에서 기회를 발견했다. 그녀는 내가 육상 감독으로서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것에 대해선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폴라는 교육자 커리어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해보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녀는 D.C. 소재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프로그램 관리자 일을 그만두었고, 해리도 직장을 그만두도록 설득했다.
그 때부터 우리는 강의 대행사 사업을 시작했다. 저축해 둔 돈이 전혀 없었던 우리에겐 한 살배기 아이와 주택 담보대출만 있었다. 그래서 두 번째 담보대출 2만 5,000달러를 받았다. 해리도 2만 5,000달러를 내놓았다. 우리는 그 5만달러로 근 2년을 버틸 수 있었다.
나는 사무실에 대형 문구용품 창고를 가지고 있는 친구 한 명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우리가 창고 안에 책상 2개와 전화기 2대를 놓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1980년에는 인터넷이 없었다. 우리는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떠올린 뒤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후 변호사 한 명으로부터 회신을 받았다. 기존 계약을 방해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그때 실제로 4~5개의 대형 대행사가 있으며, 동부 해안(East Coast)에도 일부 중소형 대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늦은 밤 다락방에 앉아 눈을 감고 머리를 저으며 자문했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우리는 단 한 명의 고객도 확보하지 못했다. 사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2~3개월 남겨둔 시점에서, ABC의 <굿 모닝 아메리카 Good Morning America> 앵커 스티브 벨 Steve Bell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과거 나는 그가 취재를 할 때 조지 워싱턴대 수영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 적이 있었다. 스티브는 기존 대행사와 계약이 끝나 우리가 그를 대행해 줄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연락을 취한 것이었다. 당시 관례는 1년 또는 2년 계약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서류 작업도 없이 악수 만으로 계약을 서둘러 마무리했다.
D.C.는 비밀이 없는 곳이다. 우리가 악수만으로 계약을 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언제든 우리를 떠날 수 있다는 점을 아는 것이 다른 이들에겐 매력으로 작용했다. 우리도 언제든 고객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첫 연사를 확보하는 데 10개월이 걸렸고, 우리는 그 첫 해 700 달러를 벌 수 있었다.
당시 우리 통장은 늘 바닥 상태였다. 우리는 금요일 밤마다 <댈러스 Dallas> (*역주: CBS 대하드라마) 를 보면서, 브로슈어를 봉투에 넣고 침으로 우표를 붙인 뒤 우체국으로 향했다. 나는 폴라와 멋진 저녁을 함께 할 때도 “당신은 이 사람을 고객으로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곤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창업을 했다면,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오로지 일에 집착하는 것뿐이다. 우리는 단 한번도 휴가를 간 적이 없다.
우리는 스티브 이후로 피터 제닝스 Peter Jennings, 데이비드 브린클리 David Brinkley, 조지 윌George Will 등 많은 언론인과 계약을 했다. 그 후 알렉스 헤일리 Alex Haley, 올리버 노스 Oliver North, 테리 브래드쇼 Terry Bradshaw 등과도 계약을 체결하면서 엄청난 성장기를 보낼 수 있었다.
우리에게 큰 전환점은 1988년 찾아왔다. 우리가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 대통령을 대행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던 때였다. 모든 대형 대행사들이 고려 대상이 되고 있었다. 우리는 레이건 대통령이 퇴임한 후인 1989년 2월, 대통령과 영부인이 우리를 최종 선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미신을 믿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가 뽑힌 이유에 대해 절대 묻지 않았다. 혹시 실수였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몇 년이 지난 후 대통령이 우리를 선택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가 유일한 신생 회사였기 때문에 그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했다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마거릿 대처 Margaret Thatcher가 은퇴하기로 결정한 이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를 추천해주었다. 노먼 슈워츠코프 Norman Schwarzkopf 장군도 걸프전 막바지에 벙커에서 우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대행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우리는 4명의 전 미국 대통령, 4명의 전 영국 총리, 수많은 전 세계 지도자들, 언론인, 작가, 다수의 전설적인 스포츠 인사들의 연사 초청을 대행했다.
나는 내 책상을 지키고 내 일에 몰두하면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그 어떤 것도 당연하게 여겨본 적이 없다. 내가 대행해온 모든 사람들을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그들의 이익을 내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나는 그들에게 여행 중 문제가 생기면 새벽 1시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들을 돕기 위해 내 사비로 전용기를 부르곤 했다. 우리는 모든 여행 준비를 직접 하면서 업계를 변화시켰다. 그래야 고객들이 연사가 차질 없이 도착한다는 것을 알고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행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삶 속에 녹아든 열정과 전환점 덕분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해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었다. 그들은 당신이 무언가에 관해 열정만 갖고 있다면, 배경과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명연설을 하는 방법]
버니 스웨인 - 위싱턴 스피커스 뷰로의 공동 설립자 겸 회장
당신의 콘텐츠를 사랑하고, 당신만의 경험에 집중하라
가장 설득력 있는 연설은 역경과 당신 스스로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다룬다. 당신은 감정을 담아 이런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당신이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교훈은 ‘나도 살아남았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단에서 내려와 연습하라.
공연을 준비하는 피아노 콘서트 연주자처럼 좋은 연설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라. 당신을 잘 모르는 몇 명의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연습하라.
당신이 연설할 장소를 미리 답사하라.
연설 장소가 비어 있을 때 걸으면서 그곳을 둘러보라. 그렇게 하면 당신이 서 있기에 최적의 장소들을 알 수 있다. (연설을 할 땐) 당신이 집안 거실을 걸어 다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INTERVIEW BY DINAH E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