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힐러리는 기업 친화적인가?

호소의 제스처 -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7월 필라델피아 전당 대회에서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과 주류로 떠오른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호소의 제스처 -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7월 필라델피아 전당 대회에서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과 주류로 떠오른 무소속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티켓을 거머쥐기 위해, 힐러리 클린턴이 보호무역주의와 반(反) 월가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내부 인사와 전문가들은 그녀의 정책이 친(親)성장 성향을 갖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녀의 계획을 면밀히 살펴보자.

대선 후보 경쟁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4개월 전, 힐러리클린턴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뉴욕 미드타운 회의실에서 10여 명의 세계적인 경제학자들과 진보 성향의 정책 입안가들을 만났다. 주관자인 로럴 Loral 전 최고경영자 버나드 슈워츠 Bernard Schwartz 외에도 FRB 전 의장 폴 볼커 Paul Volcker, FRB 전 부의장 앨런 블라인더 Alan Blinder, 노벨상 수상자 조셉 스티글리츠 Joseph Stiglitz가 참석한 이 모임의 목적은 명확했다: 승리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 후보가 미국 경제 회복을 가속화시키는 전략을 짜는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었다. 클린턴은 이 도전 과제가 민주당 후보 지명에 결정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잘 되면 대통령 당선도 떼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해결책이 명확하지 않았다. 경제 회복이 5년간 지속되면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동시에 근본적인 취약점이 노출되고 있었다. 기업 이익과 주식 시장이 다시 상승세를 탔지만 임금 인상이 주춤하면서, 최상위 소득계층만 호시절을 누리고 있다는 좌절감이 확산되고 있었다.


그날 로우스 리전시 호텔 Loews Regency Hotel에 모인 전문가들이 곧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클린턴에게 조언을 주면서 한 가지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차기 대통령이 몇 가지 정책-대규모 투자를 통한 노후 인프라 재생, R&D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 강화, 중소기업을 위한 관료주의 폐지, 그리고 노동자들의 기술훈련 실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 뜻을 같이했다. 제안한 내용들의 공통 분모는 경제 성장이었다. 이에 못지 않게 눈에 띄는 점은, 그들이 ‘부의 재분배’ 혹은 새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진보진영이 애용하는 ‘공정성’ 같은 주제와 거리를 뒀다는 것이었다. 클린턴은 크게 공감한 점처럼 보였다. 슈워츠는 “그녀가 투자와 성장에 기초한 경제를 만드는데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클린턴이 본능적으로 시장 친화적 정책에 끌렸더라도, 선거인단은 반대방향으로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다. 앞서 프라이머리 선거에서, 기득권층(The Establishment)과 그들의 합의지향적 (Consensus-Oriented) 처방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얼마나 깊은지 여실히 드러난 터였다. 공화당 유권자들은 대다수의 전문 정치인 후보들을 외면하고, 도널드 트럼프 Donald Trump와 그가 제시한 국경 장벽을 지지했다. 민주당원들도 버니 샌더스 Bernie Sanders 버몬트 상원의원을 지지하기 위해 연설장으로 몰려 들었다. 수수한 용모의 버몬트 출신 사회주의자 샌더스는 1%의 최상위계층에서 중산층으로 대규모 부의 이전을 공약했다. 민주당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 9단’ 클린턴은 증발하는 연기처럼 힘을 쓸 수 없는 어정쩡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변화의 요구에 공감하고 있다는 모습을 일찌감치 보이고 있었다. 클린턴은 버니 샌더스를 완벽하게 복제하기보다는 차별화 전략을 선택했다. 그녀는 지난 여름 첫 대규모 경제 관련 연설에서 ‘성장과 공정성에 기반한 경제’ 구축을 촉구했다. 클린턴은 성장과 공정성에 대해 “이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녀의 연설은 리전시 호텔 모임에서 논의됐던 ‘경제 성장 방안의 필요성’과 최저 임금 인상, 보육 혜택 확대, 그리고 근로자를 위한 이익공유 등과 같은 ‘진보 성향 최우선 안건’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것이었다. 또 클린턴은 ‘기업 때리기’ 정책 가운데 첫 번째로, 기업들의 단기 성과주의를 비난했다. 그녀는 기업들이 장기 가치를 훼손해가며 단기 성과에 열중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 후 클린턴의 선거 운동은 아슬아슬한 공중 줄타기와 같았다. 자칭 ‘실용적 진보주의자’인 클린턴은 기존 경제 규칙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동시에, 오랜 시간에 걸쳐 입증된 구상들의 점진적 시행을 적극 지지했다. 아무튼 지금까지 그녀는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샌더스 폭풍이 지난 7월 민주당 전당대회까지 몰아쳤지만,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이 클린턴 지지로 결집하고 있다. 진보 진영 지도자들도 일단 그녀를 믿어보기로 했다. 전당대회에서 행한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클린턴은 진보 진영의 구미에 맞게 ‘월가와 기업, 최상위 부자’의 세금을 올릴 것을 약속했다. 그녀는 이렇게 강조했다. “미국 기업들은 너무나 많은 혜택을 누렸기 때문에 이제는 애국심 차원에서 받은 만큼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도 너무 많다.” 그러나 클린턴을 지지하는 기업 친화적인 단체들은 그녀의 또 다른 연설 내용에 주목했다: “대통령으로서 나의 주요 임무는 바로 이곳 미국에서 임금을 높이고, 더 많은 기회와 더 많은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중도 좌파 싱크탱크 ‘제 3의 길(Third Way)’의 조너선 코완 Jonathan Cowan 소장은 클린턴의 수락연설 내용을 “놀랄 만한 선물”이라고 치켜 세웠다. 그녀가 대통령으로서의 향후 구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코완은 “버니 샌더스가 참석했음에도 그녀는 민주당 전당 대회 수락 연설을 하면서 임금 불평등이나 미국 경제 시스템 해체 등을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일자리와 더 높은 임금을 거론했다. 그녀에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중도주의 경제의 요체를 보여줬다”고 극찬했다.

대선을 몇 주 앞두고 클린턴과 트럼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은 기업가들과 유권자들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누가 더 기업 친화적인가? 지난 5월 커버스토리 (포춘 홈페이지에서 ‘트럼프의 비즈니스 방식(Business the Trump Way)’ 기사를 참조하라)에서 포춘은 부동산 재벌 트럼프의 과거 기록과 그가 밝힌 계획을 심층 추적했다. 지금 클린턴에 대해서도 같은 작업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솔직히 파헤칠 공적 자료들이 많은 편이다. 실제로 재계 리더들은 최근 기억나는 후보들 가운데 그 어느 누구보다도 그녀를 잘 알고 있다. 클린턴은 지난 25년 동안 대중의 관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업가들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왔다. 그렇다면 그녀가 국정 파트너로서-남편 빌 클린턴 대통령의 동반자로서-활동했던 첫 행정부 경험(민주당과 민간 기업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에서 유추해 볼 때, 양자간 관계의 간극에서 채워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

다시 한번 이번 선거는 매 순간 예상을 빗나가고 있다. 유력 후보자들이 진보와 보수를 넘나들며 입장을 바꾸는 바람에 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어졌다. 트럼프는 거의 알맹이 없는 선거 운동으로 여론몰이를 하면서 공허함만 부추기고 있다. 대부분 유권자들에게 클린턴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호한 수사법’이라는 자신의 특기를 맘껏 발휘하고 있다(그녀의 이런 불분명한 습성이 선거 기간 내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국무부 이메일 스캔들을 초래했다). 그래서 우리는 12명의 재계 리더와 정치 평론가, 경제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클린턴이 기업과 경제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답을 찾고자 했다. 물론 클린턴이 직접 우리와 얘기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포춘은 그녀 주변의 많은 내부 관계자를 접촉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그녀의 경제 계획을 검토했다.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사실은 비록 진보 진영의 과격한 요구 사항을 어느 정도 수용할지라도, 클린턴은 ‘번영과 성장의 수호자’로서 기업에 대한 충분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클린턴 측은 자신들의 진영으로 끌어들인 재계 리더들을 상대로 이런 입장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클린턴 선거정책 수석 보좌관 제이크 설리번 Jake Sullivan 은 최근 전화통화로 진행된 브리핑에서 기업가들에게 “클린턴이 경제 성장 속도를 더욱 높이는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전화는 클린턴 진영이 기업 임원들과 공화당 지지자들을 상대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전략-올 여름 내내 효과를 발휘했다-의 일부였다. 그 결과 평소 같으면 공화당 후보에게 선거 후원금을 몰아줬을 기업들이 트럼프보단 클린턴을 압도적인 차이로 지지하고 있다(그래프 참고). 일방적인 후원은 기업가들이 누가 대통령이 되기를 원하고 있는지 만큼이나, 누가 대통령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클린턴이 재계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선거 운동이 진행되면서, 최고경영자와 공화당 유명 인사들의 (클린턴) 지지선언이 잇따랐다. 처음에는 트럼프의 승리를 두려워한 나머지 클린턴에게 몰렸지만, 나중에는 합리적으로 들리는 클린턴의 경제 정책 때문에 지지를 표명했다. 휼렛 패커드 엔터프라이즈 Hewlett Packard Enterprise의 최고경영자 멕 휘트먼 Meg Whitman-최근까지 클린턴 진영이 영입한 인물 중 가장 화려한 경력을 가진 공화당 인사다-은 “그녀는 진정으로, 그리고 실제로 기업에 호감을 갖고 있다. 기업가의 역할도 잘 이해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녀는 기업을 문제의 한 부분이 아니라 해결책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심판의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만약 클린턴이 승리한다면, 그녀는 대통령 취임 선서 전에 행정부 주요 인사를 임명할 것이다(이를 통해 진보 진영은 변화에 대한 그녀의 진정성을 테스트할 것이다). 만약 그녀가 닳고 닳은 월가 인물들을 과도하게 기용한다면, 진보 진영은 클린턴에게 F 학점을 줄 것이다. 또 11월 선거에서 이긴다면, 그녀는 동력을 상실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 이하 TPP) 논의도 다시 처리해야 할 것이다. 그녀는 국무장관 시절, 12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인 무역 협정 TPP 출범에 한 몫을 했다. 그러나 클린턴은 자유 무역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커지자 선거 운동 기간 내내 협정을 반대해왔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이 협정을 살려내기 위해 선거 이후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클린턴은 어쩔 수 없이 전임자와 상반되는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 측근들에 따르면, 클린턴은 세제 및 재정 정책들(그래프 참고)과 이민법 개정, 그리고 보편적인 어린이집(universal prekindergarten) 같은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확대 등 일련의 법안들을 최우선적으로 처리함으로써 대통령직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이 진보 진영 편에 서는 것 같은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기업가들은 그녀가 (완전한 동맹 관계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국정 운영자가 될 것이라 믿을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

클린턴이 승리한다면, 그녀는 ‘불확실한 차별성(dubious distinction)’을 안고 집무실에 입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화당이 하원을 계속 장악하고 상원은 박빙인 가운데, 클린턴은 1885년 그로버 클리브랜드 Grover Cleveland 이후 공화당에게 양원 모두를 뺏긴 채 취임하는 첫 번째 민주당 대통령이 될 것이다. 사실 클린턴 입장에선 편안한 의자에 앉아 잡담이나 나눌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첫 2년을 되돌아보자: 당시 민주당은 상하원 모두를 압도적으로 장악하고 있었다. 덕분에 오바마는 예견된 공화당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역사적이고 야심 찬 안건들을 입법화할 수 있었다(7,870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 디트로이트 자동차 기업들에 구제금융 제공, 월가 개혁, 그리고 그의 대표작 의료보험 개혁 등이 그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클린턴은 압도적인 표차로 대선을 승리해도, 뭔가를 추진할 때 공화당 지도부와 씨름을 해야 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내부 인사들은 “클린턴이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의회가 미국의 노후 인프라 재건을 위한 대규모 투자안건을 승인해 대통령직을 멋지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미국의 도로, 다리, 공항, 철도의 절망적인 상태를 “국가 비상사태”라고 묘사한 바 있고, 전문가들도 이 의견에 공감하고 있다. 외교 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 따르면, 미국 인프라 수준은 2002년 전 세계 5위에서 지난해 16위로 내려 앉았다. 이 순위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지보수와 늘어나는 교통량 증가를 맞추기 위한 재정지출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향후 5년 동안, 2,750억 달러의 인프라 투자를 요청하고 있다. 대부분 금액이 교통과 다른 프로젝트에 직접 투입될 예정이고, 그 중 250억 달러는 민간 건설업체에 대출과 보증을 제공해 주는 인프라 은행 구축에 쓰일 것으로 보인다. 망가진 도로와 다리를 고치는 것이 목표의 일부분이다; 클린턴 측은 그 지출이 건설 관련 일자리를 창출, 경제 성장 속도를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클린턴 보좌관들은 그 정책 제안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인프라 개선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2012년 오바마 재선 공약의 주요 골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충분한 공화당 지지를 얻지 못해, 2번째 임기 동안 시동조차 걸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클린턴이 더 잘 할 거라고 보는 근거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의 인프라는 지난 4년 동안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오바마의 수석 경제보좌관 출신으로 현재 클린턴 선거 진영에서 일하고 있는 제이콥 레이벤루프트 Jacob Leibenluft는 “이런 문제들을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이야 말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적기라는 정치적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수 천억 달러를 지출하는 정책에 호락호락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야당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기 위해, 클린턴은 지출 프로그램과 법인세법 간소화를 함께 처리할 뜻을 비추기도 했다. 그녀의 오래된 뉴욕 동료인 척 슈머 Chuck Schumer 상원의원이 지난 봄 이 패키지 처리를 놓고 공화당과 협상을 벌인 바 있다. 민주당이 상원을 다시 장악한다면, 그는 상원 원내 대표에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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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 정확한 윤곽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핵심은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 숨겨놓은 2조 달러의 국외 이익에 할인 법인세율을 적용, 국내로 가져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적용될 법인세율에 따라, 그 세금만으로도 인프라 지출을 감당할 충분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 입안가들은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다. 그들은 루빅 큐브 Rubik’s Cube (*역주: 정육면체 퍼즐 장난감) 처럼 복잡하게 얽힌 기타 세법을 풀어,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모든 기업들이 반발하지 않도록 조율을 해야 한다. 해외로 빼돌린 돈이 없는 대기업은 할인 법인세율을 모든 기업들에게 공평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쪽은 세금 혜택을 받는 반면, 다른 한쪽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협상 당사자들이 줄어든 법인세를 메우기 위해, 세법상 우대 조항을 폐지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펼쳐지면, 개별 법인세율을 적용 받는 중소기업들도 우대책을 요구하는 등 파급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무역 갈등 - 지난 7월 필라델피아 민주당 전당대회 첫 날, 시위자들이 TPP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출하고 있다.무역 갈등 - 지난 7월 필라델피아 민주당 전당대회 첫 날, 시위자들이 TPP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출하고 있다.


클린턴은 모든 기업들의 이해관계를 어느 정도는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협상의 핵심인 법인세 감면 때문에 진보 진영과 사이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들은 분명 법인세 감면을 일부 다국적 기업에 주는 불공정 혜택으로 여길 것이다. 미국 노동 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의 정책 담당관 데이먼 실버스 Damon Silvers는 “기업들이 해외 인력 아웃소싱을 위해 받는 세제 지원을 완전히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이들이 해외 이익에 대한 세금 납부를 쉽게 미룰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5,000억 달러 이상의 돈이 미국으로 유입될 것이다. 이는 인프라 재건에 필요한 재원”이라고 지적했다.

클린턴이 전면적인 세법 개정을 어떻게 할지 확실히 밝히진 않았지만, 그녀는 당근과 채찍을 모두 활용한 것임을 시사했다. 예컨대 보상차원에선 인턴을 고용하고 근로자와 이익을 공유하는 기업들에겐 세금 감면을 해주고, 5년 이상 중소기업 주식을 보유한 경우엔 자본소득세를 폐지하는 등의 제안을 했다. 처벌 차원에선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기업들이 해외 이익에 대해 ‘출구세(Exit Tax)’을 내도록 강제함으로써 ’기업 이전(Corporate Inversion)‘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또 다국적 기업들이 이익을 조세피난처로 옮기는, 다시 말해 ‘이익축소(Earnings Stripping)’를 가능케 하는 법의 허점을 개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물론 세법 개정에는 의회의 협력이 필요하다. 만약 클린턴이 협력을 끌어내지 못하면, 그녀는 의회를 비켜가기 위해 자신의 행정 명령권(Executive Authority)을 이용하고, 새로운 입법을 통해 변화를 추진할 지도 모른다. 여기서 월가 개혁을 살펴보자. 클린턴은 자신이 상원의원 때 대변했던 월가에 대해 고삐를 죌 계획을 마련했다. 그녀가 대통령이 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정책 안건 대부분을 의회 도움 없이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희망 목록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형 금융사가 납세자의 예금으로 위험한 투자를 하는 것을 금지하는 볼커 룰 Volcker Rule 강화,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보고의무 신규 도입, 그리고 기업 불법 행위에 책임이 있는 임원의 기소 등을 꼽을 수 있다.

예비선거 대결에서 진보 진영은 클린턴이 국민보다 골드만삭스의 이익을 보호하는데 관심이 더 커 보인다고 맹비난했다. 그녀가 금융 기관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설 내용의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월가 개혁안은 개혁 지지자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아왔다. 비영리단체 베터 마켓 Better Markets의 소장 데니스 켈러허 Dennis Kelleher는 클린턴의 의지를 보여주는 증거로, 파생상품 거래 조항을 부활시키려는 노력을 거론했다. 그는 “그녀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었다. 이 조항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대형 은행과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시스템-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비은행 기관-을 매우 적극적으로 규제하려는 의지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월가는 그녀의 선거비용 금고를 계속 채워주고 있다. 정치자금 감시단체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증권과 투자업계(월가)는 클린턴의 선거 운동과 그녀를 지지하는 외부 단체를 지원하기 위해 4,750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트럼프에게 기부한 34만 6,000달러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한 가지 근거가 있다: 최소한 금융 기관들은 클린턴이 트럼프와는 달리 리더십을 발휘해 시장을 혼란에 빠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클린턴을 지지하는 공화당원 경영자인 엠지엠 리조트 MGM Resorts 최고경영자 짐 뮈렌 Jim Murren은 “시장은 정말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예측불가능성은 불안할 뿐만 아니라 큰 폭으로 기업 가치를 하락시킨다” 고 설명했다. 그들은 뉴욕 상원의원으로 8년간 활동한 클린턴의 행적을 통해 그녀를 잘 꿰뚫고 있다. 클린턴 선거진영을 잘 아는 한 금융계 인사는 “그녀는 자본 시장의 중요성과 우리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이해한다. 클린턴의 개혁 우선순위는 항상 일관성을 유지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으로나 수사적으로나 클린턴의 반 월가 논평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시대 흐름이 그렇고, 국민들도 화가 나 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기업들은 다른 점에서 분노하고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바로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7년 동안,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 기록적인 392건의 규제를 완성했다. 기업의 지지(공화당 지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를 얻고자 하는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하려면, 어느 정도 규제 완화 제스처를 보여야 할 것이다. 지난 8월 그녀는 그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역 은행과 신용협동조합에 관한 규제를 완화시켜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을 더욱 용이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진보 진영은 이런 점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진보 성향의 단체들이 모여 클린턴의 정치적 인물 발탁을 감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노동계를 비롯한 여러 단체 활동가들은 주 정부와 지역 정부, 그리고 비영리단체를 샅샅이 뒤져 클린턴이 임명하게 될 약 4,000개의 공직 자리에 적합한 후보자를 찾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Elizabeth Warren 매사추세츠 민주당 상원의원에 따르면, 그들은 ‘인사가 곧 정책이다(personnel is policy)’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차기 행정부가 감독해야 할 기관 출신 인사를 규제담당자로 임명한다면, 아무리 의도가 좋은 개혁안이라도 처음부터 좌초될 것이라는 의미다. 전관예우를 감시하는 단체 ‘회전문 프로젝트(Revolving Door Project)’ 의 제프 하우저 Jeff Hauser 국장은 “우리는 행정부가 규제할 산업에 대해 객관적이고 건설적인 의심을 갖고자 한다. 그렇다고 평생 그들의 유대 관계를 금지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공익 차원에서 규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클린턴 선거진영을 잘 아는 측근에 따르면, 그녀는 그런 압박에 움츠러들 것 같지 않다. 이 내부인사는 “그녀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기용할 것이다. 현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지만, 그 현실 때문에 운신의 폭이 제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로비스트들은 ‘클린턴이 행정부 요직에 전관 기용을 금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뒤집을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점을 당연시 하고 있다.

클린턴도 대기업을 다루는 데 항상 능숙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초창기 정책 입안 경험-1994년 남편의 의료보험 개혁 드라이브를 이끌었다-을 통해 정치 지도자가 기존 업계에 굴복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쓰라린 교훈을 얻은 바 있다. 당시 퍼스트 레이디였던 클린턴은 보험업계가 그 유명한 ‘해리와 루이스 Harry and Louise’라는 의료보험 개혁 반대광고를 내보내자, 보험 이익단체와의 협상을 거부했다. 곧바로 행정부는 보험회사와 많은 이익단체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이들은 국민들이 개혁안을 지지하지 않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클린턴은 2003년 저서 ‘살아 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 당시의 패배를 회고하며 “해리와 루이스 광고에 돈을 지원한 사람들은 현재 더 잘 살고 있겠지만, 미국인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클린턴은 자신의 힘으로 공직에 선출된 후에는 완전히 다른 접근 방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상원의원이 된 그녀는 초당적 입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남편의 적이었던 공화당 지지자들과의 공감대 조성에 힘썼다. 뉴욕에선 시와 주 북부지역 기업가들로부터 환심을 이끌어냈다. 클린턴은 그들을 대신해 관료주의를 철폐하고 조언을 제공함으로써 호감을 샀다. 일례로 코닝 Corning-1851년 설립 이후 줄곧 공화당 성향이었던 제조업계 기술기업이다-과 돈독한 관계를 구축한 덕분에 직원들이 대통령 선거 후원금으로 21만 4,000달러를 기부할 정도였다. 클린턴은 뉴욕 주 풋내기 상원의원일 때 코닝과 관계를 구축했다. 당시 그녀는 수억 달러의 연방 지원금을 확보한 뒤, 코닝이 개발을 선도한 배출가스 감축 기술을 버스와 트럭에 장착하도록 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코닝이 중국에 판매하던 광섬유 제품에 대한 관세 분쟁에서 회사 편을 들었다. 클린턴은 개인적으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성공적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 그녀는 국무장관이 된 뒤에도 코닝에 대한 지지를 유지했다. 2012년 중국 정부와 코닝이 지적 재산권 문제로 대립했을 때에도 적극적으로 개입에 나섰다.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그녀와 코닝의 호혜적 관계가 “클린턴 부부와 그들을 지지하는 기업들의 부패한 유착관계의 증거”라고 강조했다. 그들은 코닝이 클린턴 재단에 최소한 10만 달러를 기부하고, 전 국무부 장관 클린턴에게 2014년 연설료로 22만 5,500달러를 지급했다는 것을 그 근거로 지적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클린턴이 코닝의 중국 내 이익을 오랫동안 옹호한 사실은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기업이 미국의 힘과 그 힘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하는 지에 대한 그녀의 견해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다.

국무장관 재임 기간 동안 그녀를 규정한 2가지 프로젝트가 있었다: 우선 아시아가 경제 강자로 부상하는 현실을 깨닫고, 미국 외교의 중심을 유럽과 중동에서 벗어나 아시아로 옮긴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무부의 일상 업무에서 경제적 가치가 더 많이 고려되도록 기본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이다(그녀가 “경제적 국정운영 기술(economic statecraft)”이라고 불렀던 업무방식이다). 그녀는 두 번째 성과를 평범한 방식으로 이뤄냈다. 다른 국가의 외교 상대를 만날 때마다, 해외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던 미국 기업들의 명단을 항상 챙기는 식이었다(경제, 기업 및 농업 담당 국무부 차관을 역임한 로버츠 호르마츠 Robert Hormats는 “그런 일이 새로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장관이 아닌 낮은 직급 직원들이 했던 업무였다”고 밝혔다.)

이 2가지 프로젝트는 지나칠 정도로 야심 찬 계획으로 발전했다. 코닝 사례에서 보듯, 클린턴의 ‘기업 감싸기’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부분이다. 그녀는 오바마 행정부 내에서 TPP를 옹호한 주요 지지자 중 한 명이었다(TPP는 세계 경제활동의 40%를 차지하는 환태평양 시장을 하나로 연결하는 대규모 무역 협정이다). 이 협정에는 호주와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중국은 빠졌다). 미국 수출 기업들을 위한 새로운 기회 창출을 넘어, 미국의 주요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것이 목표였다. 클린턴은 2014년 저서 ‘힘겨운 선택(Hard Choices)’에서 “TPP는 아시아와 남북 아메리카 전체 시장을 묶어 관세 장벽을 낮추고, 노동과 환경, 그리고 지적 재산권 분야의 기준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한 발 더 나아가 그 협정을 “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할 전략적 계획”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열정은 지속되지 못했다. 샌더스가 지난해 10월 TPP 반대를 강조하며 여론 조사에서 앞서 나갔다. 그러자 클린턴은 협정 최종안이 자신이 생각하는 기준에 미치지 못해 협정을 반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후 그녀의 입장은 더욱 단호해졌다. 클린턴은 급기야 지난 8월 “지금 나는 그 협정을 반대한다. 선거 이후에도 반대할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으로서도 반대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선거 관계자들도 그건 클린턴의 진심이라는 걸 확인했다.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가 협정을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를 지지하는 친(親) 무역 민주당원들과 기업가들은 심리분석 테스트인 로흐샤흐 Rorschach 테스트로 통해 본 후보자 클린턴의 특성을 근거로 그 말을 곧이 듣지 않고 있다. 친 무역단체 ‘새로운 민주당 연합(New Democrat Coalition)’ 위원장을 맡고 있는 론 카인드 Ron Kind 민주당 위스콘신주 하원의원은 “그녀는 뼛속 까지 국제주의자다. 특히 환태평양 지역에서 자신이 펼쳐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이제까지 무역 협정을 확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휼렛 패커드의 멕 휘트먼도 “아마도 그녀는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협정을 재협상하려 할 것이다. 클린턴이 근본적으로 자유 무역을 반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맞장구를 쳤다.

경제 성장을 약속한 사람으로서, 그녀는 자유 무역을 반대할 수 없다. 한편으론 세계화 반대진영이 지배하는 대선에서 이기고 싶은 사람으로서, 그녀는 자유 무역을 반대해야 한다. 친 기업 성향의 유권자들이 제기하는 최종 질문은 ‘그녀가 양쪽 입장을 다 유지하면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TORY NEWM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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