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지금은 정치적 도박을 할 때가 아니다

이용택 논설위원

美 '최악 대통령' 닉슨조차

"국익이 사익보다 우선돼야"

탄핵 기다리지않고 물러나

朴대통령도 현명한 결단을

이용택이용택




‘미국 최악의 대통령’으로만 알고 있는 리처드 닉슨이 미국에 오욕의 역사만 만든 게 아니다. 국가가 혼란에 빠져드는 것을 막는 큰 결단도 내렸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당의 존 F 케네디와 맞붙은 1960년 대선에서의 멋진 승복이다. 당시 하와이주의 첫 개표에서 닉슨이 141표를 더 얻었으나 재개표 결과 케네디의 득표수가 115표 더 많은 것으로 번복됐다. 당연히 2차 재검표를 요구할 상황이었지만 닉슨은 “재검표가 이뤄지는 동안 대통령의 운명이 담보 잡힌다”며 재검표를 포기한다. 그리고 무려 8년을 기다려 대통령에 오른다.


다른 하나는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의회에서 탄핵이 추진되자 이를 기다리지 않고 사퇴를 선택한 것이다. 닉슨 외에도 앤드루 존슨과 빌 클린턴 등 두 명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더 추진됐지만 이들은 솔직한 사과와 찬반논란 등으로 탄핵이 부결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닉슨은 달랐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탄핵 분위기가 강했다. 검찰 수사에 직면해서도 ‘대통령 면책 특권’을 내세우며 2년여를 버틴 닉슨이었지만 탄핵이 추진되자 더는 버티지 않고 사퇴를 결정했다. 미국 역사에서 지금까지 ‘탄핵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이유다. 그가 밝힌 사퇴의 변은 이렇다.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견딜 수 없지만 미국은 각자의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대통령과 의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싸움을 계속하면 대통령과 의회의 시간과 관심이 모두 이 문제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저의 사임이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치유의 과정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오래된 닉슨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나 개인을 위해서라도 탄핵보다 사퇴를 선택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정혼란의 조기 수습이 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국정 마비상태다. 대통령이 물러나고 책임총리든, 거국내각총리든 어느 누구든 빨리 결정돼야 흐트러진 기강을 다잡을 수 있다. 닉슨이 사퇴를 결정한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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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신분인 박 대통령이 지금처럼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계속 버틴다면 이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품격마저 내팽개치는 것이다. 그래서 탄핵 이탈표와 헌법재판소에서의 부결 가능성 등에 기댈 요량이라면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국민들의 더 큰 저항과 분노에 직면하게 된다. 한때 정치권에서 제기됐던 2선 후퇴 요구가 어느 순간 사라진 것도 이를 받아들이기를 꺼리며 머뭇거린 결과다.

무엇보다 걱정해야 할 것은 탄핵 이후의 사태다. 단지 대한민국 최초의 탄핵 대통령으로만 남는 게 아니다. 파면과 같은 탄핵이 이뤄지면 그다음에는 범법 행위에 대한 죗값을 물을 수밖에 없다. 야당 일부에서 명예로운 퇴진을 허용하지 말고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닉슨은 영특했던 것인지 사퇴 1년 뒤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사면을 받았고, 그를 사면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국론분열을 막은 공로로 ‘케네디 용기상’을 수상했다. 범법 행위 자체가 다른 박 대통령이 사퇴를 한다고 해도 이런 과정을 거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탄핵 때와는 상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 탄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기각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말한다. 입증된 범죄사실이 없었던 노 전 대통령과 달리 검찰이 최순실·안종범·정호성 등 3명을 일괄 기소하면서 박 대통령도 피의자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검찰 조사와 특검 등을 통해 뇌물죄까지 적용되면 상황은 더 악화된다. 그러면 탄핵이 박 대통령에게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 버티는 것은 더 이상 해결책이 아니라 결단의 기회만 줄일 뿐이다.

이용택 논설위원 ytlee@sedaily.com

이용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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