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편의점 의약품 판매... ‘타이레놀’은 되고 ‘잔탁’은 안되는 이유

안전상비의약품고시, 타이레놀 등 13개 품목으로 규정

복지부, 품목수 조정 등을 위한 연구용역 고려대에 발주

올 연말 결과 나오면 이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 조정 검토

약사법 상 20개까지 늘릴 수 있어. ‘큰 변동은 없을 듯’



퀴즈를 하나 내볼까 합니다. “편의점에서 ‘어린이용타이레놀정80밀리그램(㎎)’을 살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당신은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가정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정답은 ‘살 수 있다’ 입니다.

하나 더 묻겠습니다. “잔탁은 편의점에서 구매 가능할까요?” 짐작건대 이 질문에 즉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정답은 ‘아니오’ 입니다. 한번 쯤 과음한 다음 날 속쓰림을 견디다 못해 편의점을 찾은 사람이라면 정답을 알 수도 있었겠죠.


왜 편의점이 어떤 의약품은 팔고, 어떤 의약품은 팔지 않을까요. 그것은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에 관한 고시가 편의점(24시간 연중 무휴 점포)이 팔 수 있는 의약품 품목을 딱 13개로 규정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안전상비의약품은 △어린이용타이레놀정80㎎(10정) △타이레놀정160㎎(8정) △타이레놀정500㎎(8정) △어린이타이레놀현탁액(100㎖) △어린이부루펜시럽(80㎖) △판콜에이내복액(30㎖×3병) △판피린티정(3정) △베아제정(3정) △닥터베아제정(3정) △훼스탈골드정(6정) △훼스탈플러스정(6정) △신신파스아렉스(4매) △제일쿨파프(4매)입니다.

자료=복지부자료=복지부


혹자는 이들 품목 외에 소독약과 소화제, 반창고 등도 있는데 ‘무슨 소리하는 거냐’며 반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법규상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엄밀히 말하면 의약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의약품의 품목을 굳이 13개로 정한 근거는 무엇일까요. 지난 2012년 개정된 약사법 제44조의2는 보건복지부 장관이 일반의약품 중 환자 스스로 판단해 주로 가벼운 증상에 시급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20개 품목 이내의 범위에서 안전상비의약품으로 지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때 고려돼야 할 점은 해당 품목의 성분, 부작용, 함량, 제형, 인지도, 구매의 편의성 등입니다. 논리를 따져보면 법을 바꾸지 않고도 정부 재량으로 이 품목을 최대 20개까지 늘리거나 혹은 0개까지 줄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관련기사



복지부는 최근 안전상비의약품 지정 개수 조정 등을 위한 연구용역을 고려대학교에 발주했습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3년 단위로 지정 개수가 적정한지 등을 체크해 보려 했었는데 조금 미뤄져 법 개정 4년 차인 올해 관련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해외사례 분석 등까지 포함된 연구용역 결과가 올해 말 나오면 이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께 조정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까지는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으며 13개에서 조정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열려있다”고 덧붙였다.

복지부가 이처럼 조심스럽게 얘기를 하는 것은 왜 일까요. 안전상비의약품 수를 늘린다고 하면 전국 약사들이 수익 감소 등을 이유로 어마어마한 반대를 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매출액을 공급액으로 추정해보죠. 지난 해 기준 제약사들이 전국 2만9,000여개 편의점에 공급한 안전상비의약품은 총 239억원 어치에 달합니다. 반면 약 2만1,000개 약국에는 불과 10억2,900만원 상당의 안전상비의약품이 공급됐습니다. 약국에 공급된 안전상비의약품의 총액이 편의점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입니다.

자료=복지부자료=복지부


약사들의 반대만 있다면 복지부의 의사결정은 어쩌면 쉬울 지 모릅니다. 하지만 안전상비의약품 수를 늘리자는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국민신문고에는 ‘편의점에서 잔탁도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지사제도 편의점에서 구매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등의 민원이 올라오고 있고, 국민들의 편의성 증진, 경제 활성화 쪽에 보다 중점을 두는 기획재정부도 안전상비의약품 개수를 늘리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쨌든 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복지부는 현재까지는 중간자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굳이 기자의 전망을 묻는다면 정권이 바뀌기 전에는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전망에 대한 근거는 이 일화로 갈음하고 싶습니다. 2011년 연두업무보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진수희 전 복지부 장관에게 “편의점에서 감기약 살 수 있나요”라는 물음을 던졌습니다. 진 전 장관은 그 질문에 법규상 어렵다는 취지의 답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 전 대통령은 장관이 왜 사무관처럼 일하냐며 호되게 질타했습니다.

이후 반대 등에 가로막혀 십 수년간 논의만 돼 왔던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2012년 약사법이 개정된 것도 사실 그 연장선 상에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해관계자의 입장을 거스르는 정책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그만큼 추진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에 과연 그만한 추진력이 있을까요.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