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가계부채 공생법

임승태 전 금융통화위원



최근 금융시장은 ‘트럼프 탠트럼’으로 국고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1조2,700억원 상당의 국고채 매입에 나섰는데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8년 만의 직접적 시장 개입이다. 시장의 심리적 안정과 서민층의 이자상환 부담 가중을 우려한 선제적 조치의 의미가 있는 듯하다. 가계부채는 금리가 낮아질 때에도 문제가 되더니 금리가 올라갈 때에도 골칫거리다.


지난 2001~2009년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 2006년 이후 가계부채는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소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비선형적으로 커진다. 한편 X축을 실질 주택가격 상승률(전국 주택가격증가율-물가상승률)로 놓고 Y축을 실효 가계부채 증가율(가계신용증가율-경상GDP성장률)로 설정해 생기는 4분면표에서 현 가계부채의 위치를 확인해보면 주로 제2분면에 위치한다. 제1분면은 부동산 버블 형성 국면이고 제3분면은 디레버리징 국면인데 반해 제2분면은 주택가격 상승률이 일반물가 상승률에 못 미침에도 가계부채가 경상GDP성장률보다 높게 증가하고 있는 국면이다. 이는 곧 ‘생계형 대출’이 확산하고 있는 구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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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볼 때 가계부채는 소비를 일부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한 축이 되고 있다는 역설적 설명도 가능하다. 가계부채는 소비를 제약하고 성장을 좀 먹는 암적인 존재지만 반대로 급격한 디레버리징(부채 정리)은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저소득계층 붕괴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자칫 거칠게 다뤘다가는 리처드 쿠가 주장하는 ‘대차대조표 불황’을 경험하면서 일본 경제가 겪은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가계부채는 이미 단기적 외과 수술로 해결될 단계는 지나간 것 같다. 영국이나 아이슬란드처럼 일찍 손을 썼더라면 선순환적 연착륙이 가능했겠지만 벌써 시기를 놓친 것이다. 부득불 이제는 중장기적인 ‘가계부채와의 공생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즉 단기적으로는 금리변동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고정금리 대출로의 전환에 힘쓰면서 총 134만으로 추산되는 한계가구의 출구 전략을 정치하게 마련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체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 더 늦기 전에 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금융위원회·한국은행 등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146%에 이르는 ‘처분가능소득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인 112% 수준으로 되돌리기 위한 10개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여기에는 소요재원 확보방안은 물론 세금 규제, 금융 규제, 거래 규제와 유동성 규제 등 각 부처가 가지고 있는 정책수단이 적정 경제성장률과 노동소득분배율 등과 함께 입체적으로 고민돼야 할 것이다. 임승태 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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