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감히 알려고 하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로마시대 경구를 인용해 유명해진 말이다. 그는 “계몽은 인간이 스스로 초래한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며 계몽주의를 말했다. 그리고 칸트는 “감히 알려고 하라. 미성년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오성(悟性)을 사용하려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계몽된 민중은 프랑스 혁명으로 구체제를 무너트렸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18세기 계몽주의의 모습을 보고 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 이번에는 150만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첫눈 내린 주말의 행복한 일상을 반납하고 여드름 자국의 고등학생과 눈화장을 곱게 한 여대생, 딸아이와 팔짱을 낀 아빠, 어린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엄마들이 모였다.
그리고 초겨울 싸늘한 밤 공기를 가른 함성과 구호는 비무장한 시민의 혁명이었다. 한 달여 동안 드러난 이 정권의 민낯이 만들어낸 분노와 배신감, ‘내가 이러려고 대한민국 국민이 됐나’ 하는 자괴감이 뒤섞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새로운 체제를 요구했다.
일찌감치 계몽된 이 나라의 성숙한 시민들은 농락당한 주권을 되찾기 위해, 곤두박질친 국격을 회복하기 위해 감히 알려고 했고 스스로 광장에 모였으며 당당하게 명령하는 것이다.
물론 감히 알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대단한 불편함이고 때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첫 여성 대통령에게 일말의 기대를 가졌던 모든 국민에게 그렇다. 비록 독재였을지언정 산업화를 이끌던 대통령의 딸이었기에 무한 신뢰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전쟁을 겪었고 보릿고개를 넘어본 이 땅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부정하고 싶은 현실이고 외면하고 싶은 장면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알려고 해야 한다. 처음에는 의혹에 불과했던 비선 실세의 존재가, 그들이 대통령과 공모해 저지른 국가 권력의 사유화와 파렴치한 범죄가, 수험생과 그들의 부모들을 절망에 빠트린 부정입학·학사농단이 이제는 모두 엄연한 사실로 드러났기에 그렇다.
앞으로는 더욱 참담해질지 모른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배경과 그룹 총수들과의 독대 목적,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이 비정상의 그것으로 밝혀질 때 말이다. 줄기세포와 비아그라의 실체가 드러났을 때 어쩌면 온 국민이 참을 수 없는 굴욕감에 빠질지 모른다.
그러나 이 나라의 후손들에게 희망 없는 대한민국 ‘헬조선’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알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촛불이 꺼질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그리고 국가의 모든 시스템과 기능이 마비돼버린 지금, 그 원인을 제공한 대통령은 진실과 책임에 대한 국민의 물음에 솔직하게 답해야 한다. 검찰의 대면조사에 응해야 한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시국에 대한 수습방안 마련 등”이 28일 변호인을 통해 밝힌 대면조사 거부 사유였지만 국가의 원로들까지 나서 “국가 위기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해야 한다”고 결단을 촉구한 상황이다.
칸트는 “미성년 상태의 원인은 오성의 결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지도 없이 자신의 오성을 사용하려는 결단과 용기의 결여에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대통령이 스스로 오성, 즉 지성을 사용하려는 용기와 결단을 내려주기를 바랄 뿐이다.
토요일 밤 광화문에서 일렁이는 150만의 촛불과 함께 울려 퍼졌던 노래가 여전히 귓가에서, 입가에서 떠나지 못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국민은 감히 알려고 한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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