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외고와 같은 특목고 학생들은 학생부 종합전형 등 상위 대학 수시전형으로 들어가는 데 특혜를 누리고 있어요. 고등학생들이 대학과정을 선행 학습하는 AP(Advanced Placement) Test, 소 논문 등 고액의 사교육 시장 역시 엄청나게 커지고 있는데 이 또한 결국 부유층 자녀들의 몫입니다. 수능은 수능대로 준비해야 하니 수험생은 모든 것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최악의 전형이 생겨난 셈이죠.”
사교육의 대부 손주은(55·사진) 메가스터디 회장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최근 개인 자산을 출연해 설립한 ‘윤민창의투자재단’ 업무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손 회장이지만 30년 넘는 경력의 입시전문가로서 날카로운 통찰은 여전했다.
현행 입시제도의 가장 큰 특징인 학생부 종합전형이 공교육 정상화라는 장점이 있지만 ‘부의 대물림과 계층 재생산’이라는 단점이 훨씬 크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저소득층 자녀가 최상위권 대학에 자기 힘으로 갈 수 없는 위험한 사회가 됐다”고 단언할 정도다.
대학의 이기주의 역시 입시제도가 불공정하게 변질한 원인이라고 손 회장은 지목했다. “최근 들어 이뤄지는 수시 확대 현상은 늦게 뽑으면 우수한 학생들을 놓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진 대학이 ‘입도선매전략’에 나선 결과입니다. 갈수록 재정난에 빠져드는 상위권 대학 역시 장학금을 줘야 하는 저소득층 자녀보다 소위 말해 부잣집 자녀를 선호하는 게 현실이죠.”
이처럼 불평등한 상황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손 회장은 “더욱 불평등한 대책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프랑스처럼 서울대부터 앞장서서 저소득층 계층에 할당제를 도입해 의무적으로 뽑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며 “하위 10%의 자녀를 뽑는다고 가정하면 이들에 대한 대학 정원 비율은 10% 이상으로 보장해주는 방침만 둬도 웬만한 복지 정책 100개보다 훨씬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손 회장은 최근 사재 300억원을 출연해 ‘윤민창의투자재단’을 설립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딸 ‘윤민(潤民)’이의 이름을 붙여 만들었다. 그는 “평소 사회에 재산을 환원해야겠다고 생각해왔지만 막상 계약서에 사인하려고 하니 쉽지만은 않았다”며 “결국 애초 예정했던 400억원에서 300억원으로 막판에 출연금액을 조금 줄이게 됐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한때 강남권 학원 현장에서만 수천 명의 학생을 가르쳐왔던 유명 강사 출신이지만 그는 학생들에게 이제 사교육에 매달려 공부하기보다는 ‘독특한 경험’을 쌓을 것을 권한다.
손 회장은 “돌이켜보면 초등학생 시절에 또래 친구들과 협상하고 계약을 맺으며 구슬치기를 했던 경험이 무의식중에 사업가의 꿈과 자질을 쌓는 밑거름이 된 거 같다”며 “그는 어릴 때 주스나 양초라도 직접 만들어 시장에서 팔아보는 경험을 쌓으면 나중에 인생에서 큰 영감을 받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미소를 지었다.
사교육의 대부로 불리는 손 회장이지만 사교육 시장은 오는 2020년이면 급격히 저물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입시에서 각종 스킬을 동원해 점수를 끌어올리는 전통적인 사교육 시장은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며 “최근 수학 교육 소프트웨어 업체인 노리가 미국 일선 학교와 계약을 체결하며 인정을 받았듯이 앞으로는 공교육과 사교육이 서로 협업하는 구조로 진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