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보팔 가스 참사





1984년12월2일, 인도 중부 매티야 프라티슈주(州) 보팔시. 미국계 유니언 카바이드(UC)사의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 가스가 퍼졌다. 950여명의 공장 노동자 가운데 75명이 교대를 30분 앞둔 밤 10시 무렵. 독성 화학물질인 메틸 이소시안염(MIC)을 보관한 610번 탱크의 온도가 갑자기 올라갔다. 공장 측은 물을 뿌렸으나 탱크는 더욱 뜨거워졌다. 갖은 노력도 통하지 않고 결국 자정 무렵부터 MIC가 유출되기 시작했다. 610번 탱크를 둘러싼 콘크리트가


고열로 공장은 비상 경보를 내리고 노동자 전원을 대피시켰다.

문제는 경보가 늦었는데다 공장 바깥에는 전파되지 않았다는 점. 농약과 살충제의 원료인 MIC는 죽음의 안개처럼 보팔시 전역으로 퍼졌다. 일요일을 쉬고 새로운 주일을 맞이하려 잠에 빠졌던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채 독가스에 생명을 빼앗겼다. 마침 바람도 한 점 없어 희생자가 많았다. 공장과 큰 길 하나 사이이던 판자촌에서 잠자던 1,000여명이 죽었다. 공장 인근의 보팔 철도 역사에서도 400여명의 여행자와 노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역장을 비롯해 70여명의 역무원들도 순직했다.

사고를 조사한 매티야 프라티슈 주정부는 이틀 뒤 사망자가 546명이라고 공식 발표했으나 훗날 밝혀진 사망자는 이보다 훨씬 많았다. 당시 현장에서만 3,828명이 죽고 3만여명이 상해를 입었다. 동물 2,544마리도 희생 당했다. 당시 70여만명의 보팔 시민 가운데 15만명은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앓았다. 사고 32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당시 사고의 후유증이 나타나고 아이들은 신체적 불구를 안은 채 태어난다.


민간 학자들이 추정한 희생자 수는 이보다 많다. 2주 동안 8,000여명이 죽었으며 부상자도 16만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사상 최대의 민간 산업재해인 보팔참사의 원인은 안전 불감증. 밸브 파열에 대비한 안전장치도 조기경보체제도 전혀 발동하지 않았다. 3중의 안전장치와 운영 요원이 있었으나 인건비를 아낀다며 해고하는 통에 사고를 조기에 막을 기회를 놓쳤다. 고농축 농약인 MIC의 보관에 고압 저온탱크가 필요했지만 냉각장치는 언제나 꺼진 상태였다. 저온을 유지하는데 드는 하루 전기료 40달러를 아끼려다 대형 재난을 맞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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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공장을 운영하던 유니언 카바이드사는 사고 직전년도인 1983년 매출 100억 달러에 순이익 7,920만 달러를 기록했던 거대 기업. 포츈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가운데 자산 기준으로는 24위, 매출 기준으로는 37위를 달렸다. 미국내 3대 화학회사의 하나였던 유니언 카바이드사는 주력이던 석유화학산업의 주도권이 제 1차 석유파동(1973) 이후 중동 산유국으로 넘어가고 마진도 줄어들자 해외 공장의 경비를 줄이다 대참사를 빚었다. 갈수록 경영이 어려워진 유니언 카바이드의 경영권은 2001년 다우 케미칼로 넘어갔다.

보이지 않는 피해도 컸다. 무엇보다 생태계가 훼손됐다. 독극물을 방치한 채 공장이 폐쇄돼 독성물질이 지하로 스며들었다. 주민들이 사고 이후 지금껏 수은과 중금속, 오염물질이 포함된 물을 식수로 사용 중이다. 모유에서 중금속이 나오는 경우까지 보고됐다. 현장은 방치되고 사고의 규명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보상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나 UC사 워런 앤더슨 회장은 미국·인도간 범인인도협정을 비웃듯 2014년 사망할 때까지 인도법원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30억 달러의 보상을 요구한 인도가 받은 것은 4억7,000만달러가 전부다. 미국 땅에서 사고가 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인명피해가 없었던 엔론사의 알래스카 기름 유출사고(1989년)엔 50억달러의 보상금이 나갔다. 해달 한 마리당 940달러로 계산해 산출한 금액이다. 보팔 참사의 피해자들은 UC사에게 1인당 500달러를 몇 해에 나눠 받았다. 인간의 목숨 값이 해달보다 못한 셈이다. 그나마 보상을 청구한 58만 3,000여 명 가운데 실제로 돈을 받은 유족은 극히 일부에 그쳤다.

인도의 보팔 가스 누출 참사는 산업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1986년 미국에서 마련된 ‘유해물질 배출 목록’ 같은 제도는 대부분의 국가가 뒤를 따랐다. 사고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다행이지만 문제는 북반부(부자 나라)만 그렇다는 점. 빈국은 여전히 공해와 안전사고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선진국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과 공해물질도 개발도상국에 쌓여 간다. 미국의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의 잔해 3만톤의 대부분이 인도에 쌓여 있다. 북한이 중국의 산업폐기물 처리지역으로 전락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라고 크게 다를까. 한국도 일본에서 적지 않은 산업 폐기물을 수입하는 나라다.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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